신춘문예 응모작 폭증, AI 영향?
예술가들, 창작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창작의 서사나 감동 사라질까 우려
"예술 분야, AI 한계 뚜렷" 시각도
AI 활용 표기나 저작권 등 기준 필요 목소리
2023년,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지 R.R. 마틴을 비롯해 존 그리샴 등 저명한 작가들이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소속된 미국작가협회는 오픈AI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을 사용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불법적으로 학습시켰다며, 이는 조직적인 도용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과학소설판타지 작가협회(SFWA)는 최근 '네뷸러상' 수상 규정에, 창작 과정 어느 단계에서든 AI가 사용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자동 실격 처리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동반자이자 경쟁자인 AI로 인해, 해외 예술계는 이미 급격한 변화와 진통을 겪은 지 오래다. 2018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는 AI 화가의 작품이 사상 최초로 출품돼 고가에 낙찰됐고, 202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1층 로비에 레픽 아나돌 작가가 소장품 13만여 장을 AI에 학습시켜 만든 작품을 내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 예술계에도 AI가 가져온 변화들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현장이 마주한 불안과 우려를 들어봤다.
◆글 쓰는 데 30초, 곡 만드는 데 1분
올해 언론사마다 신춘문예 응모작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일신문 6천72편을 비롯해 동아일보 9천113편, 조선일보는 전년보다 무려 5천여 편 증가한 1만3천612편이 접수됐다. 이러한 배경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텍스트 힙'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활용이 쉬워진 탓이라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오철환 대구소설가협회장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짧은 글, 시 부문 응시가 크게 늘어나서, 의심스럽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앞으로 문제가 지속되면 문학 공모전들도 백일장처럼 심사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작성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AI로 단어만 제시해도 30초 만에 글 한 편이 뚝딱 완성되는 시대. 문인들이 우려를 표하는 이유다. 지역의 한 문인은 "최근 작품들, 특히 공모전에 올라오는 작품들을 보면 뭔가 모르게 비슷한 구조와 느낌 단어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작품에 사용된 단어들을 AI에 넣어 돌려봤을 때, 실제로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고는 쏟아져 들어오는데 AI 검증 시스템이 없고 심사위원의 감각과 토론에만 의존해야 하다보니, 일부 언론사는 신춘문예도 없애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음악 분야도 마찬가지. 일부 업종의 일자리 감소는 이미 현실이다. 이창원 인디053 대표는 "음악 업계에서는 본 녹음 전 가이드 녹음을 할 때 가이드 가수가 따로 있었는데 최근 AI를 활용하는 추세"라며 "음정도 정교하고 본 가수의 스타일과 맞게 가는 경향이 있어 작업적인 부분에서는 편리하지만, 가이드 녹음을 하는 사람의 일자리는 결국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직 대구음악협회장은 "'수노'라는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목소리와 원하는 장르를 설정하면 1분도 안돼서 곡 하나가 완성된다"며 "아직까지는 작사·작곡가들이 보조 도구로서 활용하고 있지만, 점점 기술이 정교해진다면 위기의식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지역의 한 연주자는 "유학까지 다녀온 타악기 연주자가, 최근 '더 이상 연주의 의미가 없다'며 악기를 팔았다더라"며 "호흡 등에 따라 미묘하게 음이 바뀌는 현악기와 달리, 타악기는 리듬이나 강세를 데이터화해 비교적 AI로 구현하기 쉬운 편이기에, 가이드 드러머나 타악기 연주자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예술가 대부분은 창작의 보조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우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심상명 씨는 "작업 가이드 자료를 준비할 때, AI를 사용하면서부터 시간 대비 효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기존에는 악기 녹음 작업에만 3시간을 써야했는데 이제는 10분 정도로 줄어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카페에서 저작권 때문에 AI로 만든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사람이 직접 작업한 음악과 비교했을 때 특유의 전자음 때문에 정서적인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직접 작업해 만드는 과정에서의 서사나 감동은 사라지고, 음악이 그저 하나의 소모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혼란에도 한계는 뚜렷
다만 일부에서는 예술계에서 AI가 보조도구 이상의 역할은 하기 어려울 것이기에, 오히려 한계가 뚜렷하다는 시각도 있다.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은 "지난해 경북 국제 AI·메타버스 영화제에 다녀왔다. 이야기 구성까지는 사람이 맡고, 영상 구현은 AI로 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많이 집중돼있었다"며 "아직까지는 그것의 결과물이 높은 만족도를 주지는 않는 것 같다. 기술 구현도 부족했고, 꼭 AI 영화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보기도 어려워 차별점이 없다보니 크게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승우 프로듀서는 "최근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지역 작품 '별과 모래'의 심사평 중 '이 영화의 가치는 AI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영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며 "AI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AI로 만들 수 없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을 공유해나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고 했다.
신기운 영남대 트랜스아트과 교수는 "모두가 쓸 수는 있지만, 모두가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문 교육을 받은 초년생 수준으로, 숙제나 과제 등 일상적인 것을 해결하는 데는 능통할 지 몰라도 기존의 자료를 토대로 얘기하는 것이기에 그 이상은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도 AI로 해온 과제물을 제출하는 데, 전문자료들을 수십년 간 봐온 교수들 눈에는 다 보인다. 일상적인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침 없다보니 혼란 가중…논의 시작해야"
하지만 어느 공모전에서 AI를 활용한 곡이 수상하고, 대학에서부터 AI로 창작물을 만드는 지금,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동욱 계명문화대 공연음악학부 겸임교수는 "한국에서는 100% AI가 만든 작업물의 저작권을 인정받기 어렵고, 유료 플랫폼의 생성 음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용 여부를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오정향 미디어아티스트는 "2년 가량 작업에 AI를 활용해오고 있는데, 작가의 정체성을 지키는 선에서 어디까지 AI를 개입시킬 것인지 스스로 만들고 지켜야하는 데에 대한 부담과 혼란이 다소 있다"고 말했다.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은 "영화제와 같은 공모전의 경우 100퍼센트 AI로 제작된 작품은 표가 나겠지만, 일정 특정 장면 사용에 대해서 실제로 구별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생성형 AI 활용에 대해 의무 표기해야하는 지침도 따로 없어 개인마다 따로 표기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표기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타 영화제를 살펴봐도 사실 일부 장면에서 분명 AI를 활용한 장면인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있지만, 이를 분간해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영화제마다 공통된 협의체가 아니다보니 의무 표시에 관한 표준 지침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창원 인디053 대표는 "제도적인 장치에 대해 첨예하게 얘기를 나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하는 시점"이라며 "최근 김광석, 프레디 머큐리 등 사망한 가수의 목소리를 활용해 음악 창작물을 만드는 사례가 있었는데, 사전 허가 없이 생성돼 유포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소유, 저작권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앞으로 굉장히 다양한 이슈들이 생길텐데,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