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 파리와 런던, 세계사의 서재를 거닐다

입력 2025-02-21 17:55:31 수정 2025-02-21 17:55:47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역피라미드.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역피라미드.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파리와 런던은 유럽을 대표하는 여행지다.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누구나 파리의 낭만을 꿈꾸고, 런던의 신사를 기대한다. 하지만 여행지를 선택하는 순간,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디로 떠날 것인가? 한 도시를 선택하면 다른 도시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자연스럽게 두 도시를 비교해 본다. 이러한 선택은 코카콜라와 펩시, 맥도날드와 버거킹 간의 비교 마케팅처럼, 각 브랜드의 독특한 매력을 저울질하는 소비자 마음과 같다. 파리와 런던은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맞서며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두 도시가 각각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파리와 런던에서 인류 역사의 서재로 걸어 들어가 보자. 루브르박물관과 영국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시간의 흔적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은 과거 프랑스 왕실의 궁전이었던 만큼, 그 자체로 역사의 증언이다.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룬 궁전은 관람객을 압도하며 웅장함과 세련미를 동시에 선사했다. 특히, 1989년 완공된 유리 피라미드는 이곳을 상징하는 독특한 건축물로,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낮에는 자연광이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고, 밤이 되면 황금빛으로 빛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관람객들은 이 특별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며, 루브르의 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런던의 영국박물관은 루브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 기둥들이 박물관 정면에 우뚝 서 있어 고대 세계와의 연결을 강조한다. 웅장한 외관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박물관의 입장이 무료라는 사실이다. 이는 역사와 문화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려는 영국박물관의 철학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시물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수집된 유물들로, 역사의 아이러니와 그 시대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영국박물관.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영국박물관.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로제타 스톤과 함무라비 법전

로제타 스톤은 고대 이집트의 비밀을 품은 돌로, 현재 영국박물관에 자리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프랑스 군인들이 발견했으나, 1801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승전국인 영국으로 옮겨졌다. 이 돌은 고대 이집트문명을 해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집트에 대한 관심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영국박물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로제타 스톤은 유리 케이스 속에 소중히 보존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한 이 돌은 유물을 넘어, '이 돌이 없었다면 고대 문명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대 언어와 현대적 이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며, 오늘날에도 인간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만난 함무라비 법전은 신성과 권력이 결합된 상징이었다. 법전 꼭대기에 새겨진 장면에서는 태양신 샤마시가 함무라비 왕에게 법을 수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법전이 단순한 규정의 텍스트를 넘어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질서와 가치를 강화하는 도구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함무라비 법전이 단지 법률 집합체에 그치지 않고, 비교와 설득을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한 사례로 현대 비교 마케팅 기법의 선구적 출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대표적인 규칙은 처벌을 넘어 상호 간의 균형과 공정을 강조하며, 현대 마케팅 전략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펩시와 코카콜라, 맥도날드와 버거킹, 삼성전자와 애플은 모두 경쟁사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며 자신들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공격적인 마케팅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함무라비 법전이 보여주는 '같은 기준 아래 균형을 맞추는' 접근과 유사하다. 비교 마케팅은 판매 전략이 아니라 경쟁과 공존 속에서 현대 기업 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창이 될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를 상기시키며, 고대와 현대를 잇는 독특한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시공간을 초월한 세 가지 미소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밀로의 비너스가 자리한 전시실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미와 세월의 흔적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존재였다.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로, 360도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하게 빛나는 모습은 단숨에 모든 관람객을 매료시켰다. 비너스는 인간이 꿈꿔온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그러나 이 조각상이 지금의 위상을 얻게 된 데에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프랑스 정부의 국가적 차원의 마케팅이 크게 작용했다. 19세기 프랑스는 메디치의 비너스를 이탈리아에 반환한 이후, 밀로의 비너스를 헬레니즘 시대의 최고 걸작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 조각상을 통해 프랑스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루브르박물관을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그녀는 루브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작품이 되었으며,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비너스의 여운을 간직한 채 계단을 오르니, 뱃머리 위에서 날개를 펼친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나를 맞이했다. 계단의 마지막 단에 도달하자, 니케는 뱃머리 위에 서서 승리의 함성을 전하고 있었다.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생동감 넘치는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날개와 물결에 젖은 옷의 디테일은 승리가 주는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완벽하게 전했다. 나이키가 고대 이미지를 선택한 것은 인간의 노력과 승리를 상징하는 나이키 여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스포츠용품 판매를 넘어 '승리', '도전', '자기 극복'이라는 가치를 전달하며, 'Just Do It' 슬로건으로 소비자와 정체성을 연결해 성공적인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구현했다.

영국박물관 원형독서실.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영국박물관 원형독서실. 하태길 겸임교수 제공

유로스타(Eurostar)를 타고 런던의 영국박물관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만난 고대 이집트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조각상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미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미소는 신성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품었던 지도자로서의 자비로움을 담고 있었다. 따스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이집트의 태양을 연상시키는 듯했다. 권위와 동시에 평화를 전하는 모습은 루브르에서 본 모나리자를 떠올리게 했다.

루브르박물관의 인기스타인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실제로 그녀를 마주한 순간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그녀와 눈을 맞추었을 때, 모나리자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다빈치의 스푸마토(Sfumato) 기법 덕분에 빛과 각도에 따라 미소가 다르게 보였다. 1911년 도난 사건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모나리자는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의도치 않게 스캔들 마케팅(Scandal Marketing) 효과를 얻은 모나리자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오늘날에도 그녀는 루브르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이유가 되고 있다.

파라오와 모나리자의 미소는 내게 또 하나의 미소를 떠올리게 했다. 경주의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난 얼굴무늬 수막새다.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이 유물은 고대 한국 미술에서 유일무이한 예술적 표현으로 인간적이고 친근한 감정을 나타낸다. 경주의 고즈넉한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빛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2년 기증으로 돌아와 경주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미소가 현대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LG의 로고 디자인이 바로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995년, LG는 세계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인간미와 친근함을 담기 위해 신라의 미소를 차용했다. 첨단 기술을 강조하면서도 사람 중심의 가치를 표현하려는 마케팅 의도가 미소와 완벽히 조화를 이뤘다.

파리 루브르에서 출발해 영국박물관을 거쳐 경주로 이르는 여정은 단순한 예술 감상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리고 신라의 얼굴무늬 수막새에 담긴 미소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관람을 마친 후, 그레이트 코트(The Great Court)로 나왔다. 돔형 천장이 햇빛을 담아 박물관 구석구석을 밝히고 따스한 분위기를 더했다. 그레이트 코트의 중심에 자리한 19세기 원형 독서실로 들어섰다. 카를 마르크스,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곳에서 집필한 흔적이 공간에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상징적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피라미드 아래의 그랜드 홀(The Grand Hall beneath the Pyramid)은 고대와 현대가 만나는 찬란한 공간으로, 동·서·남쪽 갤러리로 이어지는 교차점 역할을 한다. 이어지는 역피라미드(Inverted Pyramid)는 천장에서 지하로 내려오는 독특한 구조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시각 효과를 자아냈다. 이 장소는 댄 브라운(Daniel Brown)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성배와 연관된 장소로 유명해지며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과거 한 명의 파라오를 위한 폐쇄적 상징이었던 피라미드는 현대에 와서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해 수많은 방문객과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파리와 런던의 박물관은 시대를 초월한 공간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발견하게 해주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했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