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조규덕] 패키징은 호남, 팹은 구미

입력 2026-06-22 16:41:59 수정 2026-06-22 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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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덕 사회2부 기자
조규덕 사회2부 기자

최근 전남·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대규모 투자 계획이 거론되면서, 'TK소외론'을 포함해 국가 첨단산업의 축이 서남권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구조와 공급망 관점에서 보면 이번 계획은 특정 지역의 기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반도체 생태계 확장의 계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권역별 기능 분산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정 권역 집중보다 분산된 거점 구축이 장기적으로 안정성을 높이는 구조다.

반도체 공급망은 특정 지역의 독점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공정과 후공정, 소재·부품·장비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호남이 패키징 거점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서남축이 강화되는 의미다. 동시에 후공정과 연계할 전공정 생산기지의 필요성도 커진다. 물류 효율과 납기 대응 측면에서도 상호 보완적 입지 전략이 요구된다.

이 지점에서 경북 구미의 역할이 부각된다. 반도체 팹의 핵심 경쟁력은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의 안정적 확보다. 수도권 클러스터는 전력 수급과 용수 확보 부담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반면 구미는 전력과 용수, 부지 등 기본 인프라에서 비교적 여유를 갖춘 지역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입지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경북의 전력 자립도는 228%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용수 역시 낙동강 수계를 기반으로 일 취수 가능량 약 100만톤(t) 가운데 32만t 수준만 사용 중이다. 구미국가5산단 2단계 168만평, 장천 일반산단 30만평 등 즉시 활용 가능한 산업용지도 확보돼 있다. 전력·용수·부지라는 3대 요소를 갖춘 점은 대규모 팹 입지의 핵심 조건이다. 초기 투자와 운영 안정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환경이다.

산업 생태계도 구축돼 있다. SK실트론의 12인치 웨이퍼, LG이노텍의 패키지 기판을 중심으로 원익큐앤씨, KEC, LB세미콘 등 309개 소부장 기업이 집적돼 있다. 구미는 '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로 지정돼 전공정 기반을 갖춘 상태다. 단일 공장 유치가 아닌 산업 전반의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17일 구미를 찾은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방발전을 위해 중앙정부 주도가 아닌 지방이 살 수 있는 먹거리 산업을 스스로 집중 육성해야 하고 정부는 모든 정책을 통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5극 3특' 전략과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상과 맥을 같이한다.

호남의 후공정 투자와 구미의 전공정 기반이 결합될 경우 구미-광주-부산으로 이어지는 남부권 반도체 벨트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가 공급망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지역 간 기능 분업이 정착될 경우 산업 전반의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역할 분담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이다. 후공정 투자 확대는 전공정 유치의 명분을 강화한다. 구미에 대규모 생산 팹이 구축될 경우, 소부장 생태계와 결합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세제 지원과 인프라 투자를 포함한 정책적 결단이 요구된다.

지역 간 경쟁을 넘어 기능별 분업과 연계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 남부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공급망 안정과 국가 산업 전략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