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국민의힘은 극우화를 고백했고, 민주당은 중도보수화를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을 구하겠다고 헌정 질서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으며, 민주당은 그동안 서 있던 자리를 벗어나 느닷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중도보수라 선언하였다. 특별한 상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둘 다 서 있는 곳이 제 자리가 아니다.
정당은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권력을 획득하려는 조직이다. 따라서 정당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 정당이 어떤 가치를 대표하는가?'이다. 정당이 대표하는 정체성이 뭐냐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정체성은 보수다. 민주당은 리버럴이다. 우리는 그런 민주당을 중도진보라고 불렀다.
국민의힘의 중심 가치는 자유다.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의 힘을 믿으며 경제적 성장을 우선 가치로 천명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중심 가치는 당연히 민주다. 모든 구성원이 주권자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경제적 차별과 불평등이 심해지지 않도록 공동체가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두 정당은 각기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가운데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왔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말이 그것을 집약하고 있다. 민주주의 없는 시장경제는 지속 가능치 않으며, 시장경제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할 뿐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모두 성공적으로 실현하여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가 두 기둥을 이루며 좋은 상호작용을 한 덕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민의힘은 언제부턴가 길을 잃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파탄을 맞은 후 겨우 '탄핵의 강'을 건너는가 싶더니 다시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윤석열을 앞세워 집권은 하였으나 지금은 그간에 이루어 놓은 보수정치의 자산을 모두 까먹는 길을 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헌법 가치를 과연 지킬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행동하고 있다.
민주당의 현실도 걱정이다. 민주당도 이미 세 차례의 집권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국민 기대가 올라가 있는데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이 있다. 책임에 대한 높아진 평가 기준에서 볼 때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보다는 지지율이 높기는 하지만 민주당 내부의 다양성과 역동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그 이유가 외부의 위협 때문이라는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정당 내부가 취약해지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리고 최근 민주당이 밝힌 중도보수정당 선언은 선거전략이라고는 하지만 지지자들을 얼떨떨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해 오던 진보적 가치의 대표성이 약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거대 양당,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추구했던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 실현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그들이 추구한 자유는 '부자들의 자유'일 뿐이고 그들의 민주는 '잘 난 사람들의 민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따가운 비판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되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가? 자유로운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적 연대는 불가능한가? 다수의 의사를 전체의 뜻으로 간주하는 민주 절차에서 소수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관용과 숙의는 불가능한 일인가? 민주적으로 엘리트를 선출하고도 자신들의 이익을 표출, 실현할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장치는 없나?
국민의힘은 극우세력과 깨끗하게 결별하고 제대로 된 보수의 자리로 돌아가고, 민주당은 합리적 진보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한계에 이른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공화'의 가치로 재활성화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가, 다수와 소수가 함께 살아가는 '모두의 나라' 민주공화국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최근의 국민의힘 극우화 경향, 민주당 중도보수 선언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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