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內戰)을 다룬 책과 영화가 주목받는 뼈아픈 시절이다. 책의 제목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바바라 F. 월터 지음)다. 정치학자(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저자는 미국에서 남북전쟁에 이은 두 번째 내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이 책을 냈다고 한다. 그는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게 될지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고 강조한다. 내전은 완전한 독재(autocracy)나,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나라(아노크라시·anocracy)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2021년 대선 결과에 불복(不服)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건은 '아노크라시'의 사례다.
월터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의 붕괴는 "매우 인기가 높은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내전의 대표 징후로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 등장'을 꼽는다. 종족 사업가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차별(差別)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가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사상 최고의 종족 사업가'로 규정한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알렉스 가랜드 감독)는 '미국에 내전이 일어났다'는 허구에 기반한 작품이다. 헌정(憲政)을 파괴한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정부에 반발해 19개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벌어진 내전을 조명한다. 대통령은 내전의 아비규환(阿鼻叫喚)에서도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들을 '적'으로 내몬다. 종군기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목격한다. 영화는 냉철한 시선으로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비극을 보여 준다.
비상계엄·내란(內亂) 논란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죄 우두머리'로 단죄하고,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은 이를 '내란 공작(工作)' '거짓 선동'이라며 반박한다. 국민들은 두 쪽으로 갈려 광장과 거리에서 외친다. 서로의 주장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야말로 정치·정서적 내전이다. 이 분열과 혼란이 탄핵심판과 내란죄 재판으로 끝날 수 있을까. 판결 이후가 더 무섭다. 내전의 끝은 폐허다. 민주주의 회복력은 극단과 분노에서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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