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지역 인사와 저녁 자리가 있었다. 모임을 가진 그 식당은 대구경북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A씨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전직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났던 까닭일까. 이날 식사 자리의 화두는 단연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최근 정치권 동향이었다.
A씨와 지역 인사들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수긍하기 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중진 의원이었던 A씨 눈높이에선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이유로 든 감사원장, 검사, 판사를 비롯한 다수 공직자에 대한 탄핵과 위헌적 특검 법안 발의, 특수활동비 예산 삭감 등은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었다. 탄핵과 특검 법안 발의는 여야가 지난한 줄다리기를 거칠지언정 서로 납득할 만한 공직 후보자를 추려 내는 방법으로, 특검은 수사 대상을 정리하는 식으로 풀어야 했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런 당위적인 정치 협상 행위가 오늘날 국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정도 정치 인식을 대통령과 측근, '친윤'(친윤석열) 국회의원들이 공유하면서 대안을 찾는 게 맞았다. 적어도 2025년도 예산안 삭감만큼은 여야 단판 협상으로 돌릴 수 있다고, 누군가 대통령을 설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극단적 해법만 남았다는 인식을 윤 대통령이 하게 된 이유를 한국 사회는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내려지고 계엄 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풀어가야 하는 지점이 됐다.
이날 A씨는 과거 그가 활동하던 시절의 국회를 반추하며 "낮에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쥐어뜯고 싸워도, 저녁에 술 한잔 걸치며 앙금을 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지금은 여야 의원이 서로 마주치면 '험한 얘기가 오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며 "정치가 더 이상 정치가 아니게 됐다"고 한탄했다.
정치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는 여러 층위에서 논의가 있다. 그중에서도 20대 국회 들어 선거제 개혁안과 검찰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지정을 두고 여야가 극한 대결을 펼쳤고, 이것이 송사로 이어지면서 서로 마주 보던 정이 시나브로 사라졌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이다.
이는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보좌진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옮겨 다니며 일했다. 자신이 갈 만한 자리가 있다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겠지만, 여야를 떠나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보좌진은 과거 총선 등을 치르면서 이 길이 막혔다고 한다. 선거 후 '다른 정당 출신 보좌진을 등용하지 말라'는 중앙당의 지침이 내려온 게 그 계기가 됐단다.
이제는 국회에서조차 "정치는 희소하다"고 표현해야 할 시절이 됐다. 이런 지경이니 어느 여당 국회의원도 대통령이 극단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정치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는 설득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를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이해함으로써 서로 '있음'을 확인하는 존재론적 과정"으로 정의했다. 그만큼 정치에 있어 사람이 만나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일은 중요한 과정이다. 이런 원칙을 잃어버린 정치가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한국 사회 전체를 불행에 빠뜨린 것이 아닐까? 국회에서 여야가 핵심 민생 법안을 논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22대 국회가 또 다른 불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남은 시간 합심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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