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中 비밀경찰 의혹 '왕해군', 주한중국대사 만났다

입력 2025-02-10 07:00:00 수정 2025-02-10 10:31:14

양옆에
양옆에 '거물'을 두고 사진을 찍은 다이빙 신임 주한중국대사. 다이빙 대사 오른쪽으로 보이는 사람은 중국 정부 비밀경찰 의혹을 받는 왕하이쥔(王海軍·붉은 원)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사람은 설영흥 전 현대자동차 중국 담당 부회장이다. 설 전 회장은 대만 출신 화교지만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위챗

다이빙 신임 주한중국대사가 왕하이쥔(王海軍·왕해군)을 최근 직접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왕하이쥔은 한국 거주 반중성향 중국인을 중국 본토로 보내 왔다는 이른바 '중국 비밀경찰'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9일 매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다이빙 대사는 국내 모처에서 중국 최대 명절 춘절 기념으로 열린 화교 상인 모임에 참석해 왕하이쥔을 만났다. 왕하이쥔은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회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당시 찍힌 사진을 보면 왕하이쥔은 설영흥 전 현대자동차 중국 담당 부회장과 함께 다이빙 대사 바로 양옆에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이 제기된 서울 송파구 식당 '동방명주' 실소유주 왕하이쥔이 2022년 12월29일 동방명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임 주한중국대사가 한국에서 왕하이쥔을 공개적으로 만난 뒤 바로 옆에 앉은 사진까지 공개한 것은 사실상 한국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왕하이쥔이 국내에서 반중성향 중국인을 붙잡아 중국으로 송환하는 업무를 해왔다는 의혹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 의혹은 2022년 9월 스페인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폭로로 시작됐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한국을 비롯한 53개국에 102개의 비밀경찰서를 개설했다"며 "그들의 주된 역할은 국외로 도주한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 폭로가 있은 뒤 정부기관들은 실태 파악에 나섰고 국정원은 왕하이쥔이 실소유한 서울 송파구 중식당 '동방명주'가 한국 내 중국인의 본국 이송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영사 역할을 했다는 취지의 조사 내용을 밝혔다. 이 식당 대표 명함의 전자우편 주소와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지목한 한국의 중국 비밀경찰서 대표의 전자우편 주소가 일치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조사 내용을 직접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태가 커지자 왕하이쥔은 그해 12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중국 정부와의 연계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질병 등 돌발적 상황으로 죽거나 다친 중국인들 귀국을 지원한 게 전부"라며 "귀국을 도왔을 뿐 연행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경이 할 수 있는 건 잡범죄 조사뿐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왕하이쥔을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경찰은 지난해 7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왕하이쥔을 검찰 송치했다. 간첩죄로는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였다. 현행법상 간첩죄는 북한 관련 문제만 다룰 수 있다. 형법상 간첩은 '적국' 관련 범죄에만 해당돼 이번 사건 같이 외국 정부나 외국인이 개입된 '외국' 관련 범죄는 조사는 물론 처벌 역시 불가능하다. 여야가 10년 넘게 해온 것이라곤 간첩죄 개정안을 계속 발의·계류·폐기하는 것뿐이었다.

익명을 원한 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혼란한 상황에 빠져있는 이때 신임 중국 대사가 문제 소지가 많은 사람을 공식석상에서 만나고 이를 스스로 내보이는 것은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하루 빨리 간첩죄를 개정해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에 '취더푸훠궈'라는 무한 리필 훠궈 식당이 들어섰다. 동방명주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집을 '명동 맛집'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방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