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교영] '보수 男·진보 女'로 갈라진 2030

입력 2025-02-03 19:58:42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페미(니즘) 극혐(極嫌)! 더불어민주당은 여성들과 이재명 살리기에만 관심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는 엉망이 되고 남자들은 더 힘들어진다." "처음엔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가 황당했고 불법이라고 여겼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엄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란 생각이 들어." 얼마 전 선술집에서 들은 20대 남성들의 대화다.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난동(亂動)을 부린 혐의로 체포된 90명 중 절반이 20, 30대였다. 이들 중 여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년층 중심이던 '태극기 부대'에 청년 남성들이 유입되고 있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의 주요 세력은 2030세대 여성이다. 서울 여의도 탄핵 찬성 집회 참석자 중 2030세대 여성은 10~18%, 남성은 5%로 추산됐다. 대신 남성들은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대통령 관저(官邸)가 있는 한남동에 모였다.

2030은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로 알려졌다.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랬던 2030이 정치 진영의 전위(前衛)로 나선 이유가 뭘까? 그것도 젠더(gender·사회문화적 성) 갈등의 골이 깊어질 정도로 열렬하게. 취업난과 경제 위기 속에 '4류 정치'의 민낯을 직시한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정치권이 '젠더 갈라치기'로 기름을 부었다.

젠더 갈등이 불거진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커진 시점이다. 남성들은 역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9년 위헌(違憲) 판결에 따른 '군 가산점' 폐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뜩이나 여성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군대를 갔다 와야 하는 남성들은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취업난까지 겹치니 불만이 폭발했다. 여성들은 여전히 남녀 불평등이 크다고 생각한다. 2016년 '서울 강남역 20대 살인 사건'은 젠더 갈등에 불을 지폈다.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했다"는 범인의 발언에 여성들은 분노했다. 남성들은 "잠재적 범인 취급 말라"며 반발했다.

정치권은 젠더 갈등을 부추겼다. 통합보다 '표'를 우선했다. 젠더 갈등은 정치적 양극화(兩極化)로 확대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의 환심(歡心)을 샀다. 남성들은 발끈했다. 2022년 대선에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성난 남성을 자극했다. 그는 여성할당제·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다. 이 대표는 '2030 남성의 대변자'란 정치 자산을 챙겼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고,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공언했다. 2030 남성은 투표로 화답했다. 계엄 선포로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은 청년 남성의 감성을 또 건드렸다. 윤 대통령은 "2030세대가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데, 유튜브로 지켜보고 있다"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시는 것을 봤다"고 역설했다.

2030의 정치적 행동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휩쓸린 젠더 갈등은 나라를 망친다. 정치권은 위기 때마다 젠더 갈라치기를 한다. 그런 정치인들은 모리배(謀利輩)다. 다양성 존중과 대화·협상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남녀가 정치적 편향(偏向)으로 양분돼, 서로를 혐오하면 미래는 없다. 이러다간 연애가 깨지고 결혼도 파탄 난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세계관이 달라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