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윤수진] 서원의 난관과 인문학의 위기

입력 2025-02-02 14:32:51 수정 2025-02-02 17:29:05

윤수진 사회부 기자

윤수진 기자
윤수진 기자

지난달 취재 차 찾았던 대구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 긴 계단을 올라 옛 선비들의 강학 공간인 초현당에 이르자 탁 트인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조명, 온도, 습도…, 그 모든 것이 선비의 배움터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서원이 조선시대 유학 역사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자, 지성과 인문학의 성지로 여겨지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고즈넉한 선비의 정취를 감상하고자 찾은 이들에게, 이 서원은 진입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 체험객은 45인승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데, 주차장 출구의 도로 폭이 좁아 대형 버스는 입구로 다시 역주행해야 나갈 수 있다.

심지어 출구는 경사가 가팔라, 대형 버스의 앞 범퍼 바닥이 땅에 박히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해당 버스에는 초등학생 40여명이 타고 있었으며, 교사와 서원 관계자 등이 버스에 달라붙어 차체를 밀어올려 큰 사고를 막았다.

이 때문에 구암서원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영남선비문화수련원은 한 달 전부터 체험을 신청한 기관에 안내도를 보내 진출입로를 여러 번 설명하고 있다. 수련원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안내하고 설명하지만, 버스 기사님은 기사님대로 화를 내시고 체험객들은 수업 하나를 손해 보는 일이 생긴다"며 "체험 프로그램의 질이 아무리 좋아도 (서원까지) 오는 것이 힘드니 전체적인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다.

서원이 이용하는 연암공원 주차장 확장 공사는 올해 10억원을 투입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미뤄졌다. 지자체에선 공원 내 문화재 구역 검토 등 행정 절차 문제로 공사가 1년 늦어졌을 뿐, 남은 예산을 투입해 올해 주차장 확장 공사 등 남은 작업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출입구 확장 공사를 통해 진입로를 1차로에서 2차로로 늘리고, 경사각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주차장 진출입로가 개선돼도 여전히 우려는 남는다. 이는 단순히 한 서원의 진출입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서원 관계자들은 대부분 적은 지원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공공 근로 인력과 근무 기간은 전보다 줄고 있으며, 각종 사업 예산도 삭감되기 일쑤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서원 관계자는 "대부분 직원이 기본급을 받다 보니, 젊은 직원들은 금방 나가고, 전문성과 연속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적자를 감수하고 잘해보려 노력하는데, 오히려 각종 사업 기간과 예산은 줄고 있다"며 "전통을 기반으로 우리 문화가 외국에도 퍼지는 시대인데, 지자체에선 인문학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인문학 관련 예산은 지자체뿐 아니라 국가 예산에서도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이 배출됐음에도, 올해 인문학진흥 예산은 지난해 374억8천600만원에 비해 24.9%나 줄어 281억2천100만원에 그쳤다. 사회과학연구지원 예산규모는 136억7천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2.2% 증가했지만, 10년 전인 지난 2014년 297억원이었던 것에 비해서는 53.9% 감소했다.

인문학의 성지라는 서원에 올라, 둘로 쪼개진 어느 나라를 내다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매일 드나드는 버스조차 역주행해야 하는 서원의 문제는, 점점 쪼그라드는 인문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편일지 모르겠다고. 혐오와 분노로 점철된 시대에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인문학이 살아나야 한다고. 많은 결정권자의 관심이 한 서원의 주차장을 넘어,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꺼이 머무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