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황영은] 슬퍼하거나 기침하는 것처럼

입력 2025-01-16 11:49:44 수정 2025-01-16 14:19:58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행복하세요! Happy New Year!

복, 건강과 더불어 행복이라는 단어는 새해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덕담의 언어 중 하나일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 한다.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행복. 추상명사가 대개 그러하듯 실체가 없는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구체적인 행복의 모습을 그려볼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규칙적인 운동과 정기적인 적금처럼, 어쩌면 그 행복이란 것을 추구하고자 발악하며 발버둥 치는 생활의 노력이 더 구체적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에 대한 갈망의 크기만큼이나 우리네 삶 속에서 차지하는 고통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추구한다고 하여 금세 행복해지지 않듯, 벗어나고 싶다고 하여 곧장 불행에서 탈출할 수도 없다. 그것이 현실이고, 우리가 짊어진 삶의 실체일 것이다. 때로는, 아니 매 순간 행복보다 더 큰 불행의 참담함으로 인해 현생은 우울하기 짝이 없게 된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음습한 포유동물/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중략)

인간이 때로 생각에 잠겨 울고 싶어하며/자신을 하나의 물건처럼 쉽사리 내팽개치고/

훌륭한 목수도 되고, 땀 흘리고/죽이고, 그러고도 노래하고, 밥 먹고/단추 채운다는 것을

- 세사르 바예호,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중에서

필자가 너무도 애정하는 바예호는 이념, 가난, 전쟁으로 인해 평생을 궁핍하게 살다 간 페루의 시인이다. 삶이 증명해 주듯이 그의 시에는 지독한 통증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행복의 즙이라고는 쥐어 짜내고 짜내도 한 방울조차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의 시를 읽으며 위안을 얻는다. 몸과 마음은 기침과 슬픔으로 고통스러울지라도 언제든 들뜰 수 있는 감성을 가졌으며, 울면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더라도 또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하루를 맞이하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살아갈 희망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형체 없는 이 격려의 모습을 굳이 명명하자면 '행복'의 퍼즐 한 조각쯤 되지 않을까.

행복은 그저 슬퍼하며 기침하면서도 차례대로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비롯되는 삶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불행이라 일컫는 따분하거나 화나거나 서글픈 일과 같이 행복 또한 일상의 소소한 부분일 따름이다. 그러니 운동과 적금처럼 발버둥 치며 행복을 좇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행동하면 된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거나 기침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