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근대사] 트럼프의 '보수혁명'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

입력 2025-01-14 04:30:00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2025' 보수 연방정부 재구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약집이나 다름없는 『리더십 지침, 보수의 약속』(The Conservative Promise) 표지. 이 보고서의 부제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모자를 쓴 트럼프 당선인.
연방대법원에 보수 성향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도록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약집이나 다름없는 『리더십 지침, 보수의 약속』(The Conservative Promise) 표지. 이 보고서의 부제가 '프로젝트 2025'다.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임명된 일론 머스크.
연방대법원에 보수 성향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도록 '사법 반(反)개혁 운동'을 이끈 레너드 리오.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임명된 일론 머스크.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트럼프 2기는 1기 때와는 달리 '보수혁명'의 태풍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의 핵심 정책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불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다. 이 정책의 구체적 실천 방법론을 담은 보고서가 920쪽에 달하는 '리더십 지침, 보수의 약속'(The Conservative Promise)인데, 이 보고서의 부제가 '프로젝트 2025'이다.

'프로젝트 2025'의 핵심 내용은 보수 정권의 장기 집권을 목표로 미국 연방정부를 재구성한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2기 집권과 동시에 미국 행정부를 보수 성향으로 개편하여 미국 우선주의와 개신교적 가치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 2025'는 그저 그런 보고서가 아니라, 사실상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청사진이자 정책 공약집이나 다름없다. 이 프로젝트 작성에 트럼프 당선인 측근들이 대거 참여했고, 부통령 당선인 제임스 밴스가 서문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 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을 중심으로 80여 개 보수우파 성향 단체의 합작품이다.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을 맡은 케빈 로버츠는 부통령 당선인 제임스 밴스와 대단히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다. 그는 헤리티지 재단 회장에 부임과 동시에 재단을 '트럼프주의 제도화'에 전념하는 조직으로 재편했다. 헤리티지 재단이 사실상 트럼프의 전략실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프로젝트 2025'는 서문에서 미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한 시절 전 세계 슈퍼 파워를 자랑했던 미국은 정치 불신이 날로 심화되고 철밥통 공무원들의 무사안일로 민생은 만성적인 위기상태에 빠져 있다. 약물과 포르노의 범람, '정치적 올바름'(PC)이 극에 달해 기독교 정신은 날로 퇴보하고 사회적 기강은 크게 문란해져 미국은 2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현실 진단을 통해 미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PC에 맞서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치권을 보장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보수혁명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좌파 세력이 곳곳에 침투하여 미국의 기득권을 장악한 지 오래인데, 과연 트럼프의 호언장담처럼 보수혁명이 가능할까?

◆트럼프의 '보수혁명'이 가능한 이유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때와는 달리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란 예측과 달리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312 대 226)과, 전국 득표율(49.9% 대 48.3%)에서 해리스 후보를 압도했다.

게다가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공화당이 승리, 양원에서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연방대법원이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인 등 압도적인 보수 성향 대법관으로 재편되었다는 점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낙태, 사형제, 총기 소유,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동성 결혼, 공공장소에서의 종교 활동 허용, 이민자 정책 등을 최종 심판하는 중요한 국가 기관이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 이상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미국 사회는 격렬하게 출렁이게 되어 있다.

연방대법관의 임기는 '선한 행동을 하는 동안' 종신직이다. 결원이 생길 때마다 보수·진보 진영은 자기 쪽 성향의 인물이 임명되도록 하기 위해 격렬한 대립을 벌여왔다. 미국에선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사법 좌파주의가 만연했다. 이 시기에 법조인을 양성하는 로스쿨은 좌파 성향 학생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법조인 대부분도 좌파 성향이었고, 연방대법원도 좌파 우세가 지속되었다.

일부 보수우파 성향의 로스쿨생들이 이런 흐름에 반발하여 1982년 '법과 공공정책 연구를 위한 연방주의자 협회'를 출범시켰다. 이 협회는 공화당 후원자 데이비드·찰스 코크 형제 등 거대기업과 보수 성향 재단의 지원을 받아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협회를 이끌며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연방대법원에 보수 성향 판사를 진입시키는 '사법 반(反)혁명 운동'을 추진해 온 인물이 레너드 리오다.

이들은 1991년 보수 성향의 흑인 판사 클래런스 토머스를 연방대법관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2005년에는 존 로버츠, 2006년 새뮤얼 얼리토, 2017년 닐 고서치 등 보수 성향 판사의 연방대법관 진입 러시가 일어났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브렛 캐버노 인준안이 통과되면서 미 연방대법관은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보수 우위로 역전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이어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이 또다시 임명되어 연방대법원 사상 최초로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완전 역전에 성공했다.

◆'보수 성향 인재 양성'부터 출발

'프로젝트 2025' 입안자들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패한 이유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하고 이끌고 실행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란 결론을 얻었다. 때문에 '프로젝트 2025'는 보수우파 성향 인재의 발굴과 훈련으로 출발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 웹사이트에는 114개 보수우파 비영리단체 리스트가 등장한다.

이 웹사이트를 통해 5천여 명의 보수우파 인재를 확보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전공이나 특성에 따라 보수계열 의원 보좌관, 보수 진영 선거 캠프, 트럼프 선거 요원으로 활동하도록 하여 경험을 쌓도록 했다.

트럼프는 1기 재임 시절 미국 주류 인맥 동원에 실패하여 정책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연방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대통령 정책을 따르지 않거나 사보타지를 하여 애를 먹은 것이다. 급기야 트럼프는 1기 대통령 임기종료 직전인 2020년 10월 21일, 연방 공무원 신분을 정무직으로 전환하는 행정명령 13957호('스케줄 F')에 서명했다.

스케줄 F가 시행되면 대통령 행정명령에 의해 연방 공무원의 해고가 가능하다. 이 행정명령은 바이든이 대통령 취임 사흘 만에 폐기했다. 트럼프는 이때 폐기된 '스케줄 F'를 되살려 시행을 예고했다.

미국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관보급 이상 고위 정무직이 4천여 명, 정책의 입안과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까지 확대하면 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스케줄 F'의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들을 해고한 후 그 자리에 MAGA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사들을 임명하여 보수혁명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보수혁명'에서 배워야 할 점

미국 정부의 정책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대통령의 정책 결정과 인사에 깊이 관여하며, 입법 과정에서 의회 수뇌부와 협상을 이끄는 실세 중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1기 재임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비서실장과의 불화로 무려 네 차례나 대통령 비서실장을 교체해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2기 때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트럼프는 자신의 당선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수지 와일스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했다. '얼음 아가씨'라는 별명답게 냉철한 사리 판단으로 유명한 와일스는 "대통령 접견자들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요구했다. 트럼프가 이 요구를 수용하여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비서실장 탄생을 앞두게 되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2기 행정부의 요직에 미국 사회의 주류 인맥, 그중에서도 미국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프로젝트 2025' 참여자들을 대거 발탁하여 요직에 내정하고 있다. 러셀 바우트 백악관 예산관리실(OMB) 실장 지명자, 국경 차르에 지명된 톰 호먼,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 브렌던 카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지명자가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인사의 상징성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의 공동 수장으로 내정한 것이다. 정부효율부는 연방정부의 대규모 구조 개혁, 규제 철폐, 행정 축소, 예산 절감을 담당하는 부처로 알려졌다. 머스크는 정부효율부가 연방정부 예산을 2조 달러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SNS 통해 정보효율부 직원 모집 메시지를 올렸는데, 그 내용이 "주 80시간 무보수로 일할 초고지능 보유자를 채용한다. 많은 지원 바람"이었다.

트럼프 2기는 환경정책에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프로젝트 2025'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바이든 정부의 행정명령 취소, 온실가스 저감조치 폐기, 환경보호청(EPA)의 규모 대폭 축소, 연방해양대기청(NOAA) 해체를 건의했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이 인간에게 해롭다는 내용 담은 2009년 EPA 보고서를 철회하여 연방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할 권리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이산화탄소는 죄가 없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2025'는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을 통해 크게 일그러진 미국의 성(性)·결혼·가족 문제에도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즉, 성경에 기반을 두고 사회과학으로 뒷받침되는 정의로 회귀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성 소수자 인권 문제는 기독교적 논리에 근거하여 LGBT 학생(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 젠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 조치 폐지를 예고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허용한 트랜스 젠더(성전환자)의 군 입대 및 군 복무를 금지시켜 현재 미군에 복무 중인 트랜스 젠더 군인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은 미국 사회 보수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포성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이 보여주듯 현저히 왼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한국이 미국의 보수혁명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냉정하고 현명한 이성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펜앤드마이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