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한윤조] 문화계에도 '지역 순환 경제'를

입력 2025-01-09 15:00:58 수정 2025-01-09 19:29:08

한윤조 문화팀장
한윤조 문화팀장

지역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2010년 무렵 치열하게 매달렸던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지역 순환 경제'다. 대구 지역 향토 기업들이 대기업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걸 보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비율이 특히 높은 대구가 살아갈 방도는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했던 때였다.

여러 논문과 책들을 뒤지던 중 얻은 결론이 바로 지역의 소비가 다른 지역으로 새 나가지 않고 우리 안에서 선순환하는 모델을 구축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자본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쏠림 현상이 가중되고 서울로만 집중되는 '서울 공화국'에서 지역이 존속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예를 들자면 지역화폐도 이 같은 지역 순환 경제 운동의 일환이다. 대구에서 발행한 지역화폐는 대구 안에서만 유통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부의 유출을 막는 효과를 가져온다.

요즘에는 이러한 개념이 좀 더 확장돼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CWB)이라는 전략까지 등장했다. 지역 자산화, 공동체 자산화, 시민사회 자산화로도 일컬어지는데,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소유권과 통제권을 가진 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역 경제를 변화시키는 경제 발전 모델을 의미한다. 개발이익이나 지역 기업의 성장에 따라 창출된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사회 내에서 '자산화'되도록 하는 모델로, 미국 클리블랜드시와 영국 프레스턴시가 지역 순환 경제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도화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자산화'라는 방안까지 동원되면서 이름이 좀 더 거창해지긴 했지만 결국 아이디어는 똑같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소비하는 돈이 지역사회의 활력을 위해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면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라는 구상이다. 나의 소비가 내 가족, 혹은 내 지인의 일자리를 지켜 주는 형태로, 결국에는 우리 공동체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상호 부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갑자기 오래전 고민했던 이 과제가 떠오른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예산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위한 해법은 없을까, 2025년 새해 각 문화예술기관의 기획을 들여다보면서부터다.

지난해 30조원의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지방교부세를 삭감하면서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예산 부족으로 전전긍긍하게 됐고, 대구 문화예술계 역시 예산 삭감이라는 칼날을 피해 가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운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문화예술계 예산이 줄고 있던 상황 속에서 또다시 숫자가 줄어들자, 각 기관·단체마다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상황 속에 지역 문화예술계가, 특히 사업 하나하나에 밥벌이가 걸린 생계형 예술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계에도 '지역 순환 경제' 도입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을 외국 연주자 초청에, 유명 타 시도 단체 초청에 써 버릴 일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과 단체·기업 등 우리 안에서 선순환되도록 하는 구조가 된다면 돈줄이 말라붙은 상황에서도 조금은 더 버티기가 수월하리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올해 대구 지역 문화기관들의 기획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한숨부터 늘어진다. 쥐꼬리만 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유명 공연장 기획 공연을 불러들여 줄줄 새 나가는 돈이 한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지역 공연장 기관장이라면 '지역' 생태계에 먼저 시선을 둬야겠지만 어쩐지 다른 데 가 있는 듯 보이는 속내가 사뭇 마뜩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