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작가는 냉소적이지만 날카로운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꼬집는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허세와 체면을 유지하려 애쓰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보다 변명으로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 고양이가 바라본 선생과 미학자의 대화에서, 미학자가 자신이 꾸며낸 근거 없는 얘기가 들통났을 때 "다른 책과 착각했다고 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지식인조차 자기 방어를 위해 진실과 멀어지기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진실을 왜곡하고 자기 합리화하는 경향이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 만연해질 때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고 병들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계엄 선포와 탄핵소추로 초래된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은 고양이의 시선을 소환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서 보여지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국민과 공익을 앞세우면서도 철저히 사익을 우선시하는 위선적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여당 주변에서는 의원들이 계엄 선포의 부당함은 인정하지만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고 한남동 관저로 몰려가는 등의 행동을 하는 이유로 영남권의 확실한 지지가 있는 데다 총선이 아직 3년 넘게 남았다는 계산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야당도 정부가 받지 못할 법안을 반복해서 처리해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고 정부 관료나 검사들에 대한 탄핵 난사를 이어 가는 것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당 대표의 시간에 맞춘 조급증의 발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을 대표해 권력을 행사해야 할 대통령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고심 끝에 계엄을 단행했다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지금은 소수의 핵심 지지층을 위한 행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은 물론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한 선택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자신이나 각자 지지층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정치적 혼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기는커녕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여야 할 법과 제도를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연은 망각한 채 고소와 고발, 탄핵소추, 권한쟁의 청구, 가처분신청 등을 남발하며 헌법적, 사법적 판단을 받아 보겠다는 공세만 반복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혼란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상대방 탓만 하는 사이 산적한 국정 현안은 무엇 하나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법과 제도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남용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라고 만들어 놓은 최후의 수단인 계엄과 탄핵이 정치적으로 변질된 사이 국민 이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초래된 대한민국의 혼란은 정치적 위선과 모순을 어느 때보다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여야는 선거에서 이기면 정의라는 태도로 국민 삶을 위한 해결책을 내놓기보다 서로의 정당성을 변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면 되지"라는 자기 합리화의 주문 역시 반복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적 성찰과 행동이 간절하다. 국민 또한 침묵이나 맹종보다 통찰력을 갖춘 시선을 통해 혼란의 시기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런 태도 속에서 '나는 국민이로소이다'를 힘줘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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