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떠나리라, 동토에서 비상하는 '겨울 진객'
◆겨울진객 큰고니의 귀환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대장관'이었다.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구미시 지산생태공원. 줄잡아 1천여 마리가 넘는 고니와 큰고니, 청둥오리 등 겨울철새들이 날아들어 습지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먹이활동을 하거나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곳 샛강에 찾아와서 겨울을 나는 큰고니는 2004년 10여 마리에 불과했으나 2012년 264 마리, 2021년 1,000여마리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을 정도로 겨울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다. 큰 고니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에게 이곳이 겨울을 안전하게 날 수 있는 보금자리로 소문난 모양이다.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호수가장자리 데크에 들어가서 큰고니들이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자연의 생태를 배우게 된다. 고니들은 수시로 머리를 처박으면서(?) 물속에서 무엇인가를 잡아먹었다. 한 떼의 고니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다가 하늘로 비상해서 생태공원 주변을 몇 바퀴 도는 선회배행을 한 후 다시 물 위로 내려앉았다.
큰고니들이 노는 바로 옆에는 몸집이 작은 청둥오리나 흰뺨검둥오리 같은 철새들도 제각각 돌아다니지만 서로 다투거나 영역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선 철새들을 통해 공존의 법칙을 배울 수 있다.가까운 낙동강변의 철새도래지로 이름난 '해평습지'나 '강정습지'에서도 겨울철새들의 활동상을 관찰할 수 있지만 탐조망원경으로 봐야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맨눈으로 눈앞에서 철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산샛강생태공원을 찾는 철새 중에서 가장 많은 큰고니는 온몸이 순백색으로 백조로도 불린다. 날개를 완전히 펴면 너비 2.4m, 몸무게가 3~8㎏에 이르며 북부 유럽과 시베리아에 주로 서식하면서 10월부터 남하해서 겨울을 보내고 3월 초에 돌아간다.
여름엔 철새가 없지만 공원내 습지 전체를 연꽃이 뒤덮을 정도의 연꽃자생지로 사진동호인들의 단골출사지로도 인기가 높다.세계에서 가장 큰 수련이자 여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빅토리아 수련(8~10월 개화)을 비롯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분류된 가시연, 온대수련, 열대수련, 붓꽃 등 다양한 수생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생태의 보고다.
◆산림청에서 '모범도시숲'으로 인증
우리나라 인구의 67.2% 이상이 도시지역에 살고 있다는 통계청의 최근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급속하게 도시화된 우리의 생활환경을 고려하면 도심 숲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허파'와도 같은 소중한 존재다. 브라질의 열대우림 아마존 등 인간의 무차별적인 숲 파괴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무너진 자연환경은 해마다 폭염과 기습폭우 그리고 폭설 등으로 당장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사막에 폭우와 폭설이 내린다는 것은 <어린왕자>와 같은 소설속에서도 상상한 적이 없지만 요즘은 외신을 통해 종종 접하고 있는 지구의 현실이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구성된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의 70%이상이 도시화된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도시 숲'은 도시민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물론 구미에는 금오산과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자연이 있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산과 숲과 강이지만 도심에 자리 잡거나 도심과 근접한 숲과 강보다 더 좋은 자연환경은 없다.
산림청은 '신년사'를 통해 "올 한해 전국에 200여 개소에 이르는 새로운 '도시숲'을 조성하고 도시공원 등의 녹지도 도시 숲으로 연결, 폭염과 미세먼지 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산샛강생태공원은 산림청이 2024년 제1호 '모범도시숲'으로 인증 받았다. 지산샛강생태공원은 (낙동강의)지류를 샛강으로 부르는데 그 샛강이 막히면서 좁은 도랑 같은 호수가 생기면서 자연습지가 조성됐다.
샛강생태공원은 샛강을 철새가 겨울을 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미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여름이면 샛강 전체가 연꽃단지로 뒤덮일 정도로 천혜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공원을 한바퀴 도는 둘레길에는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는 벚꽃길이 됐고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억새가 이곳을 찾는 시민들을 반긴다. 요즘은 철새들이 주인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겨울을 만끽할 수 있는 낙동강 스노우파크
겨울엔 다른 때보다 더 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구미였다. 거대한 국가산업단지가 줄줄이 늘어선 구미공단을 생각하면 공장 굴뚝에서 연기만 나는 모습의 무미건조한 '겨울구미'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겨울구미'는 더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왔다. 생태공원 중앙에 자리 잡은 '지산이'와 샛강이'란 이름이 붙은 큰고니 조형물은 이 '도시숲'의 겨울주인이 겨울철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철새들이 주인인 만큼 겨울에는 공원 둘레길 경관조명도 끈다. 봄부터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황토맨발길'을 포함, 3.4km에 이르는 벚꽃 둘레길을 걸으면서 구미시민이라는 자부심을 한껏 느낄 것이다.
지산샛강생태공원이 우포늪이나 낙동강습지 같이 큰고니와 같은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으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공존하는 법을 알려주는 자연의 지혜라면 인근의 낙동강 체육공원에서는 겨울철새처럼 겨울 한 철 운영하는 <낙동강 스노우파크>가 지난 해 12월 21일 개장했다. 겨우내 어린청춘들에게 즐거운 겨울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다. 구미시민은 물론 온 국민이 이용할 수 있지만 구미시민에게는 입장료 할인혜택이 있다.
1월 19일까지 운영되는 구미낙동강 <스노우파크>는 겨울을 만끽할 수 있는 눈썰매와 스케이트를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온가족놀이시설로 주말에는 눈썰매를 한 번 타려면 엄청난 줄을 서야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겨울 별미인 빙어를 직접 잡아 튀김으로 먹을 수 있는 빙어 체험장도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이라고 해서 움츠리고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을 이유가 없는 구미가 주는 유혹이다.
금오산은 사시사철 구미시민의 사랑을 받지만 겨울에는 금오산 <올레길>을 걷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구미는 조선성리학의 본산이었다. 조선성리학의 뿌리는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재로부터 김종직 김굉필, 박영, 정여창, 조광조, 김숙자 등 후학들이 조선사대부를 형성했다.
길재는 금오산에 은거했다. 그래서 구미시는 금오산 입구의 '금오산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를 중심으로 금오산인(金烏山人)이라는 호로도 불린 야은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걷기 좋은 <금오산 올레길(2.43km)>로 조성했다. 저수지 둑길을 따라가다 호수위를 걷는 수상데크를 따라 부잔교와 아치교 등을 지나 백운공원·구미성리학역사관·채미정을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가 호수의 절경과 함께 어우러진다.
박정희 향기로만 가득할 것 같은 산업도시 구미가 주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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