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위암 말기 아빠에 5살 딸…복지 사각지대 가족

입력 2025-01-07 06:30:00

아버지 노름·지인 배신…빚 갚으려 안 해 본 일 없어
2년 전 피싱 사기 당하고, 지난해 위암 말기 진단
복지 수급자 못 되는 사각지대, 단전 위기 놓인 집
도움 받을 곳 하나 없어…어린 딸아이 생각에 눈물만 나와

위암 말기인 박정호(50·가명, 오른쪽) 씨가 단전을 앞둔 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배우자, 5살 딸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 김지효 기자
위암 말기인 박정호(50·가명, 오른쪽) 씨가 단전을 앞둔 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배우자, 5살 딸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 김지효 기자

"이젠 사람이 너무 싫어요." 박정호(50·가명) 씨가 조용히 읊조렸다.

살기 위해 평생을 버둥거렸지만, 세상은 언제나 정호 씨에게 상처만을 가져다줬다. 없는 형편에 수차례 배신을 당해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주변 이들을 도우며 살았는데, 정작 자신이 아프고 나니 돌아오는 손길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정호 씨는, 건사해야 할 배우자와 어린 딸을 바라보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뿐이다.

◆배 곯으며 자라, 지인에게 수차례 배신…빚더미 앉아

정호 씨는 가족과 거의 교류가 없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누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일터가 있는 경북 영천으로 떠난 후 홀로 대구에 남았기 때문이다.

굶는 게 일상으로 이따금 큰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던 정호 씨는 학교 선생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초등학교 4년을 버텼다.

5학년으로 올라가는 해 정호 씨도 영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성인이 되고 출가하기 전까지의 기억은 온통 아버지의 폭력과 착취로 가득했다.

술과 노름을 좋아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툭하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괴롭혔다. 손찌검이 잦고, 자신의 벽돌 찍는 일을 거들지 않으면 어머니를 못살게 굴던 아버지. 정호 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버지 일을 돕고 등교했다가, 하교 후 집으로 곧장 돌아와 다시 일을 거들어야 했다.

집에 노름빚이 가득했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을 야간으로 다니며 돈을 벌던 정호 씨는 성인이 돼서도 자신이 일해 번 돈을 죄다 뺏겼다. 쌀이 없어서 가족들이 밥을 못 먹는 형편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노름을 계속했고 자신의 친형제들에게 집을 사주거나 평소에 구경도 못 하는 비싼 음식을 가져다 바쳤다. 정호 씨가 그 집에서 10년을 버틴 이유는 오직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러다 20대 초반, 친한 동생이 사업을 하겠다며 돈을 빌려달라기에 대출을 받아 빌려준 정호 씨는, 그의 사업 실패로 1억원이 넘는 빚이 생겼다. 그 돈을 갚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며 점심시간에는 도매로 떼온 옷을 팔았고, 퇴근 후엔 대리운전을 하거나 가게 등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매일 30분씩만 자가며 10년을 일했고, 정호 씨는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재활용품 사업을 함께하자던 군대 동기가 정호 씨와 정호 씨 지인의 투자금을 몽땅 들고 도망쳤다. 천만 원을 투자한 지인은 매달 대출 이자가 100만원이라며 정호 씨에게 그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정호 씨는 자신도 대출금으로 허덕이는 중 사채까지 써가며 지인에게 2년간 돈을 부쳐줬지만, 알고 보니 지인은 이자를 핑계로 정호 씨에게 매달 돈을 받아먹으려던 무뢰한에 불과했다.

가까운 이들의 연이은 배신에 상처만 남았다. 몸과 마음을 추슬러 삶을 잘 가꿔나가고 싶었으나 인생은 쭉 하락선이었다. 정호 씨는 일하다 우연히 마음 맞는 이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양가의 반대로 가득했던 결혼 생활은 마냥 행복하지 못했다. 정호 씨는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했지만, 어쩐지 빚은 계속 쌓여만 갔다.

◆위암 말기 진단, 단전 위기의 집…복지 사각지대

지난해 여름, 정호 씨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밥을 먹기만 하면 명치에 음식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먹은 걸 죄다 토해내야 했다.

통증에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병원을 찾은 정호 씨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전신에 암이 다 퍼져 수술이 불가능하고, 이미 늦었다는 소식. 자신에게는 4살인 딸과 배우자가 있는데,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남은 기간은 수개월 남짓이랬다. 병원에서는 마지막으로 임상 치료를 권했고, 정호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 이후 몸 상태는 극단을 달렸다. 찬 바람을 맞으면 살을 칼로 찢는 듯한 통증이 일었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일은 당연히 그만둬야 했고 배우자도 정호 씨를 돌보느라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했다. 2년 전 생활비를 대출하려다 피싱 사기를 당한 데다 정호 씨는 파산, 배우자는 개인회생 중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형편은 더 나빠져만 갔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정부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할부금이 끝나지 않은 중고차가 재산으로 잡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다행히 정호 씨 가족의 사정을 알게 된 딸의 어린이집 원장님이 어린이집 건물의 낡은 빈방을 빌려줘서 지낼 곳은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자가 식당에서 벌어오는 10여만원의 돈으로는 회생 비용과 공과금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회생 절차는 취소됐고, 이달 초 부부의 휴대폰이 모두 끊긴 데다, 2달 넘게 밀린 보일러와 전기도 이번 달을 끝으로 끊길 예정이었다.

티없이 맑은 5살의 딸아이는 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지내느라 천식을 앓았다. 또래보다 한글도 느려 언어치료실을 다니고 있었지만, 정호 씨가 아프고 나서는 그마저도 그만둬야 했다. 정호 씨는 한참 커야 할 나이인 딸이 자신 때문에 제대로 못 먹고 못 배우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도 가족의 집엔 울음 섞인 한숨이 가득하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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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 ㈜매일신문사(이웃사랑)

[지난주 성금내역]

◆벼랑 끝에 몰린 희귀병 앓는 정윤혜 씨에 2,135만원 전달

빚더미에 앉은 채 희귀병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앓으며 고통 받는 정윤혜 씨(매일신문 12월 24일 9면 보도)에게 2천135만3천263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태린(김동수) 4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채움행정사무소김원일 2만원 ▷이신덕 30만원 ▷이강준 3만원 ▷전기형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최은서 1만5천원 ▷최정원 1만5천원 ▷조현주 1만원 ▷김태상 1만원 ▷배상영 1만원 ▷석봉호 1만원 ▷성영아 1만원 ▷정세헌 1만원 ▷윤인주 5천원 ▷김리나 1천원 ▷'2025행운빌며돕기' 5만원 ▷'어려운시기돕기' 870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의지할 가족 없이 쓰레기집에서 사는 한미숙 씨에 2,103만원 성금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쓰레기 가득한 집에서 사는 한미숙 씨(매일신문 12월 31일 10면 보도)에게 44개 단체, 121명의 독자가 2천103만2천76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태원전기 100만원 ▷㈜일지테크 100만원 ▷㈜다우약품(윤종규)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양동석)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 10만원 ▷법무사 김태원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유성에스에이치(이석현)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현대전산인쇄㈜(이기복) 10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느티나무한약국 5만원 ▷동산내과(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박준석)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땀눈물(로지스올) 5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마린슐레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태릉표구화랑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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