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심리적 저지선(沮止線)으로 봤던 원·달러 환율 1천450원이 깨졌다. 환율은 26일 주간 거래에서 단숨에 1천465.5원까지 뛰었는데, 장중 고가 기준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6일 1천488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물론 원화 가치만 떨어진 것은 아니다. 달러는 최근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내년 금리 전망 상향과 트럼프 경제 정책을 반영해 강세를 이어가고, 이에 따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108로 올라섰다. 달러인덱스는 연준이 이를 만들 당시인 1973년 3월 기준 100이다. 석 달 전만 해도 100선에 머물더니 이후 꾸준히 우상향세다. 연말 수입업체의 결제가 몰려 달러 수요가 커지면 원·달러 환율은 더 오를 수 있다. 고공 행진을 하는 환율 탓에 증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개인과 기관의 순매수를 외국인의 순매도가 압도하는 상황이다. 연말 산타랠리는 바다 건너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고환율은 경제의 위기 신호다. 특히 정부의 원·달러 환율 관리 범위인 1천400원을 훌쩍 뛰어넘어 1천460원까지 치솟았다는 것은 상황이 심상찮다는 의미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대통령 탄핵안 통과 등 정치적 불안정만으로는 환율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내재된 불안 요소가 정치 상황 탓에 본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당장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만 1.5%포인트(p) 이상이고, 국채 10년물 기준 한·미 금리 차이는 석 달 새 3배가량 커졌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행은 내년 경기 위험을 고려해 추가 금리 인하를 명시(明示)했는데, 1월 중 단행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장률도 복병(伏兵)이다.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성장률이 낮은 나라의 통화가치가 높을 수 없다. 내년엔 한·미 간 경제성장률 격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비해 내년에 위안화 약세를 용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안화 급락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통화가치의 동반 하락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버거운 원화 가치 유지가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외환보유고 4천억달러마저 깨지면 심각한 상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11월 4천700억달러에 근접했던 외환보유액은 3년 만에 4천15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고환율 장기화로 기업과 가계에 미칠 악영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도 답답하기만 하다. 함부로 환율 방어에 개입했다가 효과도 못 거두고 달러만 날리는 최악의 상황이 걱정스러워서다.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활용과 공공기관과 금융 공기업의 외화 차입(借入) 역시 거론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직후 72시간 내에 어떤 정책을 쏟아낼지도 불확실하다. 외부 불안을 바꿀 수 없다면 내부 불안부터 잠재워야 한다. 정국 안정과 과감한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릴 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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