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래의 소야정담(小夜情談)] 세월

입력 2024-12-26 13:30:00 수정 2024-12-26 16:05:33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60년을 동고동락해 온 노부부가 봄나들잇길에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모처럼 영감님 등에 업혀 물길을 지나던 할머니가 기분 좋게 물었다. "무겁지 않수?" 할아버지가 지체없이 대답을 했다. "무겁고 말고! 머리는 돌이지, 가슴은 절벽이지, 엉덩이는 늙은 호박이지…." 은근히 화가 난 할머니가 앞선 채 한참을 더 걸어가는데 또 개울이 나왔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자청해서 할아버지를 업었다.

영감님이 겸연쩍은 마음에 한마디 건넸다. "무겁지?"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했다. "하나도 안 무겁소! 머리는 텅 비었지, 가슴엔 헛바람만 가득하지, 거시기는 쭈그렁밤송이지…." 서로 주고받은 미운 정담 고운 정담에 취해서 두 내외는 노을이 짙은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라도 늙어갈 수 있을까. 낙화유수(落花流水)의 인생 행로에 세월 가면 남는 게 무엇일까.

'둥글기 전에는 더딘 것이 늘 한이었는데, 둥글고 난 후에는 어찌 그리도 쉬 기울어지던가, 서른 날 밤 가운데 온전히 둥글기는 단 하룻밤, 우리네 인생 백년도 모두 이와 같은 것을'(未圓常恨就圓遲 圓後如何易就虧 三十夜中圓一夜 百年心事總如斯). 곡절 많은 삶을 살다간 조선 중기의 어느 문인이 남긴 '망월'(望月)이란 한시가 새삼 가슴을 적시는 연말이다. 어느덧 또 한 해가 기울었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공자(孔子)가 냇가에서 한 이 말로 인해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표현이 생겼다고 한다. 물처럼 흘러가는 세월은 어느 누군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세월은 그렇게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사람이 천지에 사는 것은 백구(白駒)가 갈라진 틈새를 지나가는 것(白駒之過隙)과 같다"고 했다.

홀연히 지나가는 세월을 '문틈 사이를 스쳐 가는 흰 망아지'에 비유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피력한 것이다. 가수 나훈아는 '고장난 벽시계'라는 노래에서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한두 번 사랑 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라고 탄식한다. 하지만 세월이 가지 않으면 그것은 더 큰 낭패가 아닌가.

세월은 강물같이 흘러야 한다. 그것이 세월(歲月)이란 글자의 제격이다. 한 해를 보낼 때마다 허송세월의 자탄이 늘 앞섰지만, 그렇다고 가는 세월에 미련을 둔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해마다 연말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수식어를 되풀이해 쓰지만, 우리 현대사에 갑진년(甲辰年) 올해처럼 어이없는 세월이 또 있을까. 저만치 다가선 을사년(乙巳年)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울 따름이다.

우리가 '세월'이란 화두를 떠올릴 때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소환하는 것은 그녀의 소설 '세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비극적인 최후로 더욱 유명한 그녀의 소설 같은 삶도 한몫을 할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편견을 누적시키며 그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저해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혼란한 세월 속의 불가해한 삶일수록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피폐한 심신의 여정을 서둘러 마감한 박인환 시인이 '목마와 숙녀'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린 것도 그럴 것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는' 까닭일 것이다. 수필가 피천득이 '인연'에서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아사코와의 재회 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고 회고한 이유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은 시대 흐름과 개인 여정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개인의 삶이 시대의 상황과 얽히고, 그 환경과 인생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역사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인 지도층이나 지식인의 삶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번 연말연시의 역사적 격랑에서 자유로울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역사적으로도 어두운 경험이 있는 을사년의 엄습과 격동이 그래서 더 걱정이다.

오래전에 들은 노스님의 선문답 같은 송년사(送年辭)를 떠올려본다. "가는 년(年)이나 오는 년(年)이나 그년이 그년이다." 그것은 '가는 해에 부질없는 미련을 가지지 말고, 오는 해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목하 갑진년이 물러서고 을사년이 다가오고 있다. 해가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가만, 그래도 오는 해에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과 역사의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