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대구 도심의 종로는 조선 말기 달성서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곳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북성로와 함께 대구의 중심상권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진골목과 화교 거리, 약령시 등이 한대 어우러져 다양한 계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번화가였다. 최근 이곳에 유명 커피숍이 개점하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눈에 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1백년이 넘은 전통한옥을 개보수하고 그 옆에 단층의 기와집을 증축해 제법 규모 있게 조성되어졌다. 한국 전통가옥에 글로벌 커피숍 브랜드가 협업해 디자인 한 공간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자아내는 한국적 감성과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제법 둥치가 큰 은행나무와 대들보, 서까래, 야외 테라스는 그 자체가 포토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겨운 운치를 느끼게 해준다.
얼마전 이곳에 동요 시인이며 설치미술가인 신홍식이 대형 조형물 ⟨Water Warehouse⟩를 설치해 장소와 공간이 주는 의미를 조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상가 입구에 조성된 조형물은 고택 마당에 있는 우물을 모티브로 제작 된 것이다. 고택의 역사만큼이나 질곡의 시간을 함께 했던 우물이 갖는 정체성을 현대적 조형미로 재해석한 조형물은 역사만큼이나 함축적 의미를 갖는다.
자연석과 유리조각을 철망을 이용해 쌓아 올린 거대한 우물과 같은 조형물의 상부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뿜어져 나와 마치 샘물분수를 연상케 한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변에서 작가가 채취한 자연석과 빛을 받으면 다양한 색채로 변화하는 청색 유리조각을 가공하지 않은 채 2.7m 높이의 철망에 가득 채운 조형물은 그만의 모던한 감각과 간결한 형태의 미학을 유니크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조형물 상단에는 보름달을 닮은 둥근형태의 백색 달 항아리가 놓여 있다. 단순하면서 추상적 인상을 자아내는 달 항아리로 인해 한국적 이미지는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유럽엔 도시마다 크고 작은 광장이 있어 그곳에서 주민들이 서로 만남과 소통을 갖는다. 광장 한가운데 놓인 분수대에서는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물줄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아름답게 장식된 주변의 조형물들과 어우러진 음악과 공연, 전시 등 축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광장과 분수대만큼이나 축제가 주는 매력에 빠져 소중한 추억을 얻어간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광장과 분수가 갖는 공간적 의미를 좀처럼 찾아내기 힘들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이 짙은 광장문화에 비해 우리의 문화 속에는 마을 한 가운데 지하수를 퍼올려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우물문화가 있다. 이곳은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우던 장소이며 이웃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소중한 공간이다.
작가 신홍식은 이처럼 서양의 분수와 우리의 우물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조성하고 이곳에 상징적 조형물을 설치함으로써 옛 종로의 명성을 되찾아 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베여있다.
문화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발전을 모색해간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만남의 장은 이제 광장의 분수대와 우물가 빨래터를 넘어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글로벌 콘텐츠로 소통하는 확장의 문화가 세상을 이어갈 것이며 예술 또한 변화를 거듭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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