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유재민] 혁신과 전통의 조화

입력 2024-12-08 14:19:28 수정 2024-12-08 15:36:03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대립과 논쟁이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나치게 각자의 견해만을 피력한다면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문제점을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8세기 중반 계몽주의가 꽃을 피우던 프랑스에서는 1752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1710~1736)의 오페라 부파 '마님이 된 하녀'와 장 바티스트 륄리(1632~1687)의 오페라 '아시스와 갈라테'가 같은 날 상연된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의 혁신과 프랑스 오페라의 전통을 지지하는 두 진영 사이의 대립으로 부퐁논쟁이 발생했다. 장 자크 루소(1712~1778)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과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선율을 주로 사용한 이탈리아 오페라가 예술의 본질에 가깝다고 했으나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인 장 필리프 라모(1683~1764)와 그의 지지자들은 음악의 구조적 완성도와 프랑스의 문학적 전통을 반영한 프랑스 오페라야말로 진정한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감정적이고 자연스러운 것과 이성적이고 형식적인 것, 대중이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예술과 특정 계층에서 향유되는 격식을 갖춘 예술 중 음악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로 확장됐다.

19세기 중반 독일에서는 음악을 통해 특정 주제나 상징을 나타내고자 한 표제음악과 음악 자체의 형식미를 강조한 절대음악을 중시하는 두 진영 간의 격렬한 대립과 논쟁이 벌어졌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를 중심으로 프란츠 리스트(1811~1886), 엑토르 베를리오즈(1803~1869) 등 이전에 없던 양식과 극적인 표현으로 혁신을 추구한 신독일악파 진영은 음악이 서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로써 기능해야 함을 주장하며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고 현대 음악의 발전을 이끌었다. 반면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를 중심으로 로베르트 슈만(1810~1856),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 등 고전주의적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보수파 진영은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감정적 깊이와 구성적 완성도를 강조했다.

바그너는 브람스의 음악이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했으며 음악을 자유롭게 탐구하지 않고 전통을 지나치게 고수한다고 주장했다. 브람스는 바그너의 음악이 갖는 진보적 성향과 표제성이 형식적 완성을 저해한다고 생각했으며 지나치게 감정적이면서 과장됐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비록 브람스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성에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교향곡과 실내악에서 나타나는 브람스의 음악적 깊이와 구조적 미학을 인정했으며 브람스는 바그너의 음악적 혁신성과 음악극에서 보여준 극적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립과 논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공존해왔으며 이를 통해 편향적 태도를 개선하고 혁신과 전통 사이의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 대립이 적대가 아닌 건전한 비판과 논리적 검증을 수반한 논쟁으로 이루어진다면 철학적 사고의 개발을 촉진하고 상호 이해와 타협을 배우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부퐁논쟁, 신독일악파와 보수파의 대립은 예술의 방향성과 본질에 대한 논의의 장이 돼 서로의 창의적 발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