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사태 이후 정국(政局)을 둘러싼 국민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던 내수 부진이 더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고물가 속에 씀씀이를 최대한 줄여 오다가 금리 인하에 힘입어 소비가 다소 살아날 조짐을 보였으나 정치적 위기 상황이 터지면서 그런 가능성의 불씨마저 완전히 꺼질 판이다. 3분기 우리 경제는 이전 분기 대비 0.1% 성장에 그쳤다. 한국은행은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직전 분기 대비)가 0.1%로 집계됐다고 5일 발표했다. 2분기 역성장(-0.2%)의 기저효과 덕분에 가까스로 반등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매우 걱정스럽다. 당장 그간 성장률을 떠받들던 수출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자동차·화학제품 등의 수출이 0.2% 감소했다. 3분기 성장률 기여도(寄與度)만 따져보면, 순수출(수출-수입)이 -0.8%포인트(p)를 기록해 1%p 가까이 성장률을 깎아내렸다.
그런데 다행히 내수는 성장률을 0.8%p 올리는 효과를 냈다. 특히 민간 소비는 0.3%p 상승해 미미하지만 반등의 기미를 보이는 듯했다. 물론 여전히 도소매·숙박음식업·문화 등에선 감소세지만 회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비상계엄 사태는 여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식품·외식업계는 내년까지 내수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신규 채용 축소와 비용 절감에 나선다고 한다.
3분기 성장률에서 건설투자만 0.5%p 하락 효과를 가져왔는데, 당분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매수 심리도 얼어붙었다. 5일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2월 전국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전월 대비 16.2p 떨어진 82.0을 기록했다. 지수 100 아래는 부정 전망이 많다는 뜻인데, 심지어 수도권조차 108.8에서 83.4로 급락했다. 관광·유통업계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한국 여행을 경고해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목표한 외국인 관광객 2천만 명 달성도 어렵다. 총체적 난국(難局)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늦지 않게 민심 수습책을 내놔야 한다. 불안 심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정부 여당에 본때를 보여 주겠다며 감액 예산안을 들이민 야당은 한 걸음 물러서고, 정부도 증액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한다. 살림이 파탄(破綻) 지경이다. 정치 다툼도 국민이 살아야 쓸모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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