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 석용진 초대개인전
12월 19일까지 환갤러리
벽암록(碧巖錄)에서 양무제(梁武帝)가 달마대사에게 묻는다. "크고 성스러운 하나의 진리란 무엇입니까?" 달마대사가 답했다. "확연무성(廓然無聖). 만법은 텅 빈 것이다.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다."
일사 석용진 작가가 53번째 개인전 주제로 삼은 '확연(廓然)'은 여기에서 나왔다. 크고 넓게, 텅 비어있다는 뜻이다. 효율적이고 빠른 것이 최선임을 강조하는 시대, 빈 것은 곧 공허함과 상실감만으로 인식되는 시대에 그의 전시 주제는 '비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불교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요소로 지(地)·수(水)·화(火)·풍(風)을 꼽는다. 다섯 번째가 바로 공(空)인데, 결국 이 공이 지수화풍을 작용하게 한다"며 "이 시대는 명성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하다. 비워져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고, 채워져 있으면 모든 것이 멈추고 결국 죽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비우고 비워내는 삶을 살아왔다. 10대부터 붓을 쥐었고 제1회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 수상, 제1회 서울서예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등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 받았으나 해외 유명 갤러리들의 전속 작가 러브콜을 거절하며 작업에만 몰두했다.
"내 작업은 삶의 방편일 뿐입니다. 삶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죠.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으면 유명한 건 필요가 없다, 다 헛껍데기다 라는 생각입니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 대한 기록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를 택했다. 30여 년간 현대서예를 이어오던 그가 다양한 장르를 더해 만들어낸 종합시각예술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묵향이 나는 서예와 색면추상, 개념적 요소, 타이포그래피와 전각 등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전통 서예와 현대 서예, 한국화·서양화, 구상·비구상, 평면·입체 등 장르적 경계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 그는 "나는 융합을 한다. 융합은 단순히 여러가지를 모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합쳐져 다른 걸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갖고 와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40여 년간 화업을 이어오며 재미있는 것을 찾아 변화하다보니 지금까지 왔다. 사실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제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움직이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 삶에 대한 질문과 기록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개인전은 오는 19일까지 환갤러리(대구 중구 명륜로 26길 5)에서 볼 수 있다. 053-710-5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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