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자주 찾게 하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가 새로이 만들어낸 게 아니다. 애초에 사전에 있었거나 사투리로 널리 쓰이던 말을 작품에 스미게 한 것이다. 독자의 눈을 오래 붙듦과 동시에 적확한 쓰임새로 전달력을 높인다. 박경리, 박완서 작가는 '소설어 사전'이 따로 있다. 작가가 발굴하다시피 한 단어와 표현들이 정리돼 있다.
신조어도 요즘 말로 '효능감 쩌는' 표현이다. 휘발성이 높아 생명력은 짧지만 전달력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비슷한 집단이나 세대에서 사용돼 범주화의 기준도 된다. 예컨대 록밴드 공연에서 주로 외치던 'break'는 1990년대 후반 온라인 채팅에 '시원찮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지금은 사어(死語)나 마찬가지다. 이걸 빈번하게 쓴다면 '고인물' 취급을 받아도 싸다.
개중 일반어 반열에 오르는 것도 있다. '멘붕(멘탈 붕괴)'은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나 신문 기사에서도 적잖이 쓰인다. 올해 부유(浮遊)한 말 중 '긁'도 빼놓을 수 없다. '긁다'의 어간만 쓰인 경우인데 실제는 피동형 '긁히다'의 뜻으로 풀이한다. "자존심이 긁혔냐?"는 뜻이다. 단음절은 당사자에게 단검처럼 강하게 꽂힌다. 영어에서 욕설을 칭하는 'four-letter word'도 우리말로 표기하면 단음절이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꼴 때 쓰는 단음절 표현도 마찬가지다.
'긁'은 마구잡이식 말싸움 실전에서 쓰이는 '삐졌나?'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초등학생 버전의 '어쩔티비'에 비해 직접적이며 저돌적이다. 답이 뻔한 유도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심기가 불편해졌다면, 즉 '긁혔다면' 진실이 드러난다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 간다. "긁?"이라 비아냥대도 무람없으려면 '원영적 사고'가 필요하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좋은 측면을 부각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의 긍정적 사고 흐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
양심의 가늠자가 제가끔 다르니 나만 떳떳하면 괜찮다는 세계관도 저변에 퍼지고 있다. 이마저 '원영적 사고'라는 시선으로 풀이하긴 곤란하다. 요즘 들어 윤리적 흠결마저 탄압의 일종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윤리적 잣대가 들쭉날쭉해진 걸 사회의 진보라 봐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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