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저출산 추세 지속 시 한국 인구가 현재의 3분의 1보다 훨씬 적어질 것이라고 꼭 짚어 한 전망은 섬뜩하다.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지난 십여 년간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 선거철마다 주요 이슈가 되곤 했다. 물론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똑같은 공약 들이 나올 것이다. 세금감면, 교육지원, 분양 특혜 등 정부와 우리 사회가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래된 논의에 지쳐서인지 타협안들도 힘을 얻고 있다. '저출산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문제해결에 더 집중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사회적 여력이 없어 저출산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과한 지원이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들이다.
◆허리띠 졸라매는 정부
물론 예산을 투입해 저출산 문제를 인위적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녹록지 않다. 실제 최근 보건·복지·노동 분야의 재량지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세수 부족과 감세 정책으로 정부 지출 여력이 줄면서 결과적으로 서민과 노동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저출산 정책에 대한 지원이 쉽지 않은 셈이다.
최근 공개된 기획재정부의 '2023~2025년 분야별 의무·재량지출' 자료에 따르면 다자녀 가족에 대한 지원을 포함한 보건·복지·노동 분야 재량지출은 지난해 69조3000억원에서 내년 65조4000억원으로 3조9000억원 줄어든다. 12개 분야 중 가장 큰 폭의 감소다. 그다음으로 지출이 가장 많이 줄어든 분야는 연구·개발(R&D)로 같은 기간 1조4000억원 감소했다.
재량지출 쓰임새를 보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정부 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뉘는데, 의무지출은 법으로 지출 규모가 결정되는 법정지출과 이자지출이라 정부가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 반면 재량지출은 정부가 정책적 의지에 따라 재량권을 가지고 규모를 정할 수 있다.
저출산·보건·복지·노동 분야 재량지출이 줄었다는 것은 이 분야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뜻이다.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되 다자녀 가족을 포함한 약자복지를 두텁게 할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해온 것과는 모순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인 인구 증가로 보건·복지·노동 분야 의무지출은 늘고 있다. 보건·복지·노동 분야 의무지출은 2023년 156조7000억원에서 내년에는 183조6000억원으로 26조9000억원 늘어난다.
결산을 기준으로 보면, 보건·복지·노동 분야 재량지출 감소 폭은 더 커졌다. 지난해 보건·복지·노동 분야의 재량지출 금액은 2021년보다 16조8000억원 줄어든 65조5000억원이다. 이는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17조4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감소 폭이 크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정부지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저출산이 지방이 직격탄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중앙집중적 메커니즘 때문이다. 저출산의 가장 큰 피해는 지방이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지방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수도권 사람들은 서울로, 다시 강남으로 몰리면서 일자리부터 정주 여건, 문화생태계까지 수도권과 서울에 쏠려 있고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은 대한민국 영토의 11.4%를 차지하는 반면, 재정자금이 60~70% 넘게 한 곳에만 몰리면서 격차는 심해졌다. 지자체가 자주적인 재량권을 갖는 재원의 비중만 보더라도 100을 기준으로 서울특별시는 80에 육박하지만, 부산광역시부터 대구광역시, 전라남북도만 보더라도 60 초반 대를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 수도권과 서울에 쏠려 있던 재정자주권을 상향 평준화시키고 지방분권을 앞당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자리 잡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맞추기 위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의 현실적 조정 ▷조세권 이양을 통한 지자체의 우수 대기업 유치 ▷지역 여건을 고려한 지방소멸대응기금 운영으로 장기적인 지역 맞춤형 일자리 정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2022년 전면적으로 개정된 지방자치법도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치를 한층 끌어올렸다. 서울과 수도권 위주의 인구 쏠림 현상을 막고 지방분권을 현실화하는 자치권 확대 방안들이다. 여기에는 ▷사무 배분 원칙을 바탕으로 100만 대도시에 대한 특례를 인정하고 지방소멸 위기를 고려하는 방안, ▷지역 간 균형 발전 등을 위한 국가-자치단체, 자치단체 간의 협력을 의무적으로 설치 및 '특별지방자치단체' 조문을 구체화 등이 포함돼 있다.
지자체 스스로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정주 여건부터 문화생태계, 일자리 창출부터 출산율 확대까지 담아내며 재정 자립도를 높이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게다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별개로 다루다 발생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고자 이를 통합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 균형발전 특별법'이 통과 되고 이에 근거한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하며 지방시대를 위한 제도적 밑거름이 조성됐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준비는 끝낸 셈이다.
현실은 어떤가. 지방은 저출산에 따른 지방소멸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도권과 지방, 지역 간 불균형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비교편익이 유의미한 헌법의 권한을 재위임 받아 임용된 서울과 지방 공사 간의 임금현황을 살펴보면 절박한 수준이다.
대구유통공사의 경우 서울농수산식품공사에 비해 35%의 높은 인당 매출액에도 불구, 임금수준은 70%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기도에 있는 구리농수산물 공사에 비해서는 73%나 높은 인당 매출액에 비해 임금수준은 8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서울과 지역, 지역 내에서도 극심한 양극화 '불평등이 지속·심화하고 있는 셈이다.
◆정년연장, 가장 현실적 대안(?)
정치권은 저출산을 해결할 대안' 증상완화를 위한 해법으로 정년연장을 제시하는 분위기다.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정년을 연장해 주자는 제안이 한국은행 내에서 나왔고 자녀가 둘 이상인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소속 공무직, 무기계약직 직원을 정년 이후에도 최대 2년간 재고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기재부와 대구시 역시 방향을 잡은 상태다. 저출산 직격탄을 맞은 대만은 정년 65세에서 또 연장했다.
정년 연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더욱 절실한 이유는 높은 노인 빈곤율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저출산과 고령화의 위기를 맞았던 선진국들은 이미 정년을 연장했거나 폐지했고 현재 폐지 수순을 밟아나가는 국가도 있다. 고령화가 심한 일본은 법적 정년이 65세지만 근로자가 희망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 미국, 영국은 이미 정년을 폐지했고 독일은 2029년까지 65세에서 67세로 정년이 늦춰진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소속 공무직 근로자들의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최대 65세로 연장하기로 한데다 대구시도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서 '정년연장'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다른 정부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직은 물론 공무원까지 정년연장 요구에 나서고 있다.
현재 정년연장 및 계속고용 관련 논의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과연 정년연장이 저출산의 해법일까. 글쎄다. 정년연장은 이미 대세인데다 직접적인 연관성도 없다. 정부지출여력이 없으니 정년연장을 대안으로 삼자는 주장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대처다.
무엇보다 정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자체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현금을 주든 정 자원이 부족하다면 돈 안 들거나 적게 들고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든 모든 국가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 '돈이 있어도 국민이 없으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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