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수능의 문이 열렸다. 젊은이들이 지금껏 달려온 고독한 열망에 대한 결실을 이루는 기회다. 열아홉 역동적인 꿈의 날개는 황금빛 시기라 불리지만 환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학업에 시달린 늦은 귀가와 손에 잡히지 않는 성적에 이미 지쳐있다. 자신만의 껍질 속에서 스스로 단련시키며 미래의 모습을 조형하느라 갖은 애를 쏟는 중이다.
단감이 익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닮았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은 주홍빛 열매를 얻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계절을 견딘 인내와 침묵으로 응집돼 있다. 외부 시선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 가며 스스로 덮고 있는 억압 속에 목표를 향해 속을 채워가고 있다. 차갑고 단단한 껍질 속에 깊은 열정을 쌓으며 때를 기다린다. 심신을 다듬고 성장해 가는 방식은 단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조용하게 익어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고3 시기는 삶에서 특별한 계절로 기억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모님의 기대와 친구 간의 대화 속에서 씁쓸함을 맛본다. 성인이 되기 전의 불안함과 덜 익은 감처럼 떫은 단계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 시기에 나 역시 힘든 고비를 지날 때면 어머니는 단감을 곱게 깎아 내미셨다. 예전에 나는 겉이 단단하고 씹는 촉감이 차가운 과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꼭꼭 씹으면 단맛이 나와 참 맛있다며 권하셨다. 어쩌다 떫은 맛이 입안에 번지면 내 얼굴은 구겨졌고,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열아홉 나이는 떫은 맛을 지나 단맛을 채워가는 시기다. 그 단맛 역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아쉽지만, 그때는 한 단계를 넘어서기 위한 꾸준한 질주가 길게만 느껴진다. 단감을 다 먹고 나면 그 중심에 씨앗만 덩그러니 남듯, 이 시간이 지나면 고3의 계절도 추억으로 머문다. 흔히 고통 속에 보람을 찾는다고 하지만 수험생의 속사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온갖 사연 속에서 학업에 지칠 즈음, 찬바람이 불면 책상 위 수험서는 마지막 페이지를 향한다.
살아보면 단맛과 쓴맛이 어우러질 때를 알게 된다. 고등학교 마지막 시간은 속내의 단단한 씨앗을 품고 소원을 향해 버티며 익어가는 길이다. 겉으로는 어른스러워 보여도 불안 속에 희망을 담은 마음이 얽혀 있다. 그 과정을 함께하는 부모님은 자식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각을 단련하며 깊어지길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결실을 향한 모습은 고요히 성숙해 간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속살을 익혀가며 수확을 기다리는 단감처럼. 서늘한 공기 속에서 당도를 더해가듯 학창 시절을 통해 값어치를 얻어가길 바란다. 힘들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있다. 내보이지 않았던 가능성과 열망을 품고 나아가라! 삶은 고요한 질주 속에 무르익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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