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섭 기자
'마피아 게임'이라는 놀이가 있다. 사회자가 참가자 중 누군가를 마피아로 지목하면 참가자들은 마피아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몇 번의 기회 안에 찾아내지 못하면 마피아가 승리한다.
첫 번째 기회에는 누가 마피아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초반부터 서로가 서로를 마피아로 지목해 공격하는 '대환장 파티'가 열린다. 난장 끝에 마피아로 지목돼 게임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대개 무고한 참가자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자신의 논리나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고 자신의 논리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우격다짐만 남는다.
이 놀이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아지는 건 불신을 내면화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돌의 유튜브 컨텐츠에서 마피아 게임을 할 때마다 마지막에 참가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똑똑한 사람은 남을 믿지 않고, 우둔한 사람은 남을 믿게 마련이다'는 교훈인지 뭔지 모를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젊은 시민들 사이에 불신은 이미 내면화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사직 전공의를 만나면서 깊게 하게 됐다. 최근 우연히 대구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다 지금은 일반 의원에서 일반의로 일하고 있는 사직 전공의를 만났다. 현재 의료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의정갈등 초기부터 품었던 질문 한 가지를 던졌다. "의료공백 초기에 하다못해 머리띠 매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하지 그랬나"라고. 그랬더니 그는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여론전 이야기가 있었지만 국민들이 '의사가 늘어야 한다'는 공감대 때문에 우리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지난 3월 인터뷰로 만난 사직 전공의 A씨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맡았던 환자가 퇴원하기 전 치료 결과나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고 있는데 보호자 행동이 뭔가 수상하더란다. 확인해보니 몰래 자신의 말을 녹음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저에게 말씀하시고 녹음하셔도 되는데…. 저 못 믿으세요?"라고 했더니 말을 못 하더란다.
슬펐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누군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사회가 돼 있다는 사실이 가슴 한 켠을 푹 찌르고 들어왔다.
불신의 기저에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몽진부터 6·25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 사건처럼 위정자나 기득권층이 시민들의 신뢰를 자신의 영달과 엿바꿔 먹었던 역사가 숨어있을 거라 본다.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처럼 사회의 '어른'이라 하는 분들 중 사회의 신뢰를 자신의 영달로 치환한 분들은 자신이 걸어간 길에 대해 반성하기 보다는 "남들은 나보다 더 하지 않았느냐"며 변명하기 바쁘다.
반성이 없으니 분노와 함께 소위 '돈 잘 번다'는 전문직의 직업적 소명 자체에 대한 불신이 일반 시민들에게 남았다. 그 분노와 불신은 하필 그 직업적 소명을 실현하려는 젊은 시민들에게 쏟아졌다. 각 학교의 젊은 선생님들이 학부모에게 시달리는 탓에 교편을 놓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점이 그 증거다.
젊은 전공의들 또한 환자로부터 받은 불신이 쌓이고 쌓여서 시민을 믿지 못한 탓에 '사직'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까지 나오다 보니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불신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이제 10대, 20대 초반인 친구들이 사회를 살아나가려면 불신을 기본값으로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는 걸 보면서 입맛이 매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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