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틀 선생 이야기
어릴 때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리이스 신화' '아라비안 나이트' '피이터 팬' '톰소오여의 모험'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책이 바로 '돌리틀 선생 이야기'였다.
작가 휴 로프팅 (Hugh Lofting 1886~1947)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그 참혹한 전투 속에서 군마와 군견들이 부상을 입고도 인간과 같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 또한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으로 호송되어 치료를 받으면서 미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를 할 줄 아는 돌리틀 박사 이야기를 쓰고 그림까지 직접 그려 보냈다고 한다.
이를 책으로 묶어 1920년에 발표한 책이 바로 <돌리틀 선생 이야기>인데 지난 2020년에 100주년 기념판으로 책이 나왔다. 어릴 때 읽은 책의 영향으로 수의사가 되었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은데 적어도 병원에서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돌리틀 선생'처럼 섬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것 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나오지 못하면 우리가 간다."
지난해부터 외딴 섬마을 동물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름하여 '3677 동물구조대'. 우리나라 섬의 수가 모두 3,677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늘어나서 이제는 수의사 5명, 동물보호단체 3곳, 훈련사 1명 그리고 포획 간호 봉사자들도 제법 많은 분들이 참여한다.
'3677 동물구조대'는 다친 동물을 구조해서 치료하고 섬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한 후에 다시 원래 장소로 되돌려 놓아 개체수를 조절하는 일을 한다.
◆세 발 백구와 상할머니 아이유
전남 신안군에는 섬이 무려 1025개나 있다. 섬들이 넓게 흩어져서 해역이 넓은데 그 중 작은 섬하나에 한살 남짓 어린 백구가 한쪽 다리를 들고 다녔다. 멀리서 보면 세 발 백구처럼 보였다. 보호자에게 사연을 들어보니 어릴 때 집 바로 앞에서 오토바이에 치여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우선 다리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을 해야했다. 포터블 X-레이를 찍어보니 뒷다리가 골절되어 있는 게 보였다. 사고 후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아물지 않은 다리로 생활을 했던 것이다. 보호자에게는 백구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견사를 짓겠다는 약속을 받고 백구를 수술해 주기로 했다.백구는 동물병원으로 이송되어서 골절 수술을 받은 후 3주 간의 재활 치료를 거쳐 건강하게 섬으로 돌아갔다.
서해 백령도 옆에는 생태트래킹 코스로 유명한 대청도가 있는데 거기에 '아이유'가 살고 있다. 올해로 18살이니까 상할머니인 셈이다. 보호자께서 애지중지 돌봐왔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고 하는데 검진을 통해서도 아이유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심장병과 자궁축농증이 의심되어 수술이 필요했지만 나이가 문제였다. 게다가 심장 상태도 매우 위험해서 수의사인 우리들도 선뜻 수술을 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호자의 의지가 확고했다.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일이라면서 직접 병원까지 함께 가겠다고 했다. 백령도에서 일산에 있는 동물메디컬센터까지의 여정이 길고 험했지만 싫은 기색도 없이 아이유만 걱정하는 보호자의 마음이 참 커보였다.
2주 간의 수술과 회복을 거쳐서 아이유는 다시 건강한 몸으로 보호자와 함께 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간의 수술과 치료를 담당한 홍지희 수의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익금면 이장님댁 진도개
고흥반도 끝 거금도 익금면 이장님댁에도 백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견사 바로 뒤에 비닐하우스가 있었는데 반 정도가 검게 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며칠 전 한밤 중에 비닐하우스에 불이 났었는데 이장님은 한 해 정성껏 지은 고추를 널어놓은 건 아랑곳 않고 그저 백구 구하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하셨다. 없는 집에 식구 는다고 그 와중에 누군가 박스에다가 꼬물이 두 마리를 또 두고 갔단다.
작은 마을이라서 누가 그렇게 버려두고 갔는지 알 법도 하겠건만 이장님은 그저 사람 좋은 표정만 지으시고는 그 녀석들도 거두어 키우시겠다고 했다. 한 눈에 봐도 어린 녀석들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 같았는데 피부병에다가 벼룩 배설물들이 털 속에 가득했다. 다른 이상은 없어서 기생충약 먹이고 피부병 주사를 주었다.이장님의 너그러움을 닮아서인지 개들도 마냥 해맑았다.
◆1.5m 목줄에 묶인 레트리버
마을과 동 떨어진 낡은 창고 처마 아래에 레트리버 한 마리가 짧은 목줄에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생후 7개월쯤 되어 보였는데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강아지였다. 창고에는 농자재가 있었는데 혹시나 그걸 건드릴까봐 목줄을 1.5미터 남짓으로 짧게 묶어둔 것 같았다. 창고 처마도 짧아서 비라도 오면 속절없이 맞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게다가 마시라고 둔 물그릇은 언제 둔 것인지 푸른 이끼가 가득했다.
처지가 그런데도 사람을 보고 좋아라 꼬리치는 녀석을 보니 속이 상했다. 보호자는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마당은 새파란 잔디가 잘 가꿔져 있었고 바다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이 예쁘게 놓여져 있었다. 너무나 낭만적인 모습에 너무나 화가 났다. 주인이 푸른 잔디 마당에서 함께 뛰어놀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정작 이 녀석이 커 가면서 생각보다 다루기가 어려우니까 멀리 창고 처마 바닥에 말뚝을 박고 쇠 목줄로 묶어둔 것이리라.
◆섬마을 노인과 동물
대부분의 섬마을 주민들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정감이 깊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건강이 성치 않는 어르신들에게 개와 고양이는 짐이 되기도 한다. 육지에서 사는 자식들은 어른들이 적적해 하실까 봐 보내드렸겠지만 레트리버나 진도개같은 품종의 큰 개들은 어르신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체중이 7kg 이상만 되어도 고령의 어르신들은 마당에 개를 풀어 놓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어르신이 힘이 센 개를 제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는 꼬리치며 연신 만져달라 아우성이지만 고령의 어르신은 그저 한발치 너머에서 밥 주고 똥 치우는 것 외에는 다가설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럴 경우 선택은 목줄이 된다. 여전히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지만 주도권은 이미 넘어간 셈이다.
어쩌다 가여워서 목줄을 한 번 풀게 되면 더 이상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슬프게도 목줄은 더 견고해지고 짧아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보호자는 개가 사라져 주길 바라며 그런 개들은 종종 버려지거나 떠돌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유기견'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유기견을 줄이는 비책
최근 유기견 또는 들개떼 무리로 인한 인명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인적이 드문 시외곽지의 밤거리 또는 농어촌 마을을 다니는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불과 수분 이내에 물림 사고가 발생하는데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할 때면 이미 사고는 발생한 이후이며 개들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섬마을과는 달리 도심지에서는 십여 년 이상이나 지속적으로 유기견 포획을 실시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유기견 발생은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도심에서 유기견 포획과 제거를 반복하더라도 어느 순간 다른 개들이 골목에 등장하는 풍선효과가 길고양이 보다 훨씬 잘 일어나는 이유이다.요즘은 동물보호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 반려동물을 고의로 유기하는 사례는 점점 줄고 있다. 이것이 명백한 범죄 행위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당에서 개를 키울 경우에는 여전히 동물 유기를 관용하는 측면이 있다. '묶인 개는 차라리 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어르신들이 돌보기 힘드니까.', '시골이니까'... 이렇게 사정을 봐주다보니 유기견 발생이 끊이지 않고 들개의 위협이 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유기견을 줄이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없을까? 있다. 이미 법으로도 정해져 있는데 바로 '동물 등록제'의 의무화에 있다. 동물등록 과정을 통해 개를 입양하는 보호자들이 좀더 신중하게 개를 선택하고, 입양을 한 후에는 끝까지 보살피겠다는 책임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대도시뿐만 아니라 농어촌 소규모 마을 단위별로도 마당개에 대한 중성화 수술이 집중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섬마을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뱃길에서 언제나 보람과 아쉬움을 함께 느낀다. '더 많은 동물들을 구했어야 했는데, 치료를 좀 더 하고 왔어야 하는데….' 아마 남은 평생을 다 써도 3677개 섬을 다 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나올 수는 없을테니까 힘닿는 데까지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그들을 찾아갈 것이다.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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