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브이문'을 매년 보자

입력 2024-10-30 13:25:54 수정 2024-10-30 19:44:39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구도(球都)가 귀환했다. 한때 야구에 울고 웃던 대구의 5060세대에겐 과거의 향수를 소환하는 한 해였고, 대구의 2030세대에겐 야구의 진(眞) 재미를 느끼게 해준 해였다.

물론 한국시리즈에서의 패배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승패(勝敗)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다. 그보다는 대구 야구팬들이 오랜만에 혼연일체가 되어 삼성라이온즈에 열광하는 모습은 사뭇 뭉클하기까지 했다.

많은 이가 '라팍(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의 시대'가 실질적으로 열렸다고 입을 모은다.

2016년 삼성이 홈구장을 라팍으로 옮긴 뒤 삼성 야구는 내리막길을 탔다. ▷2016년 9위 ▷2017년 9위 ▷2018년 6위 ▷2019년 8위 ▷2020년 8위 ▷2021년 3위 ▷2022년 7위 ▷2023년 8위 등으로 2021년 잠깐 기록한 호성적을 제외하곤 하위권에 머무는 암흑기를 보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연패(連霸) 위업을 이루며 '왕조'라고까지 불리던 삼성 야구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워낙 성적이 나오지 않자,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별의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삼성 구단을 운영하는 제일기획의 소극적인 투자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고, 팬들 사이에서는 '99688'(2016년부터 2020년까지 삼성 순위를 빗댄 표현)이라거나 '라팍의 저주' 등의 비아냥도 유행했다. 2022년 삼성이 13연패(連敗) 수렁에 빠질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고위 임원에게 토로한 일화도 유명하다.

힘겨운 시기를 넘기고 올해 삼성 야구는 명가(名家)를 재건했다. 올 시즌 초반 삼성이 하위권에 머물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시원하게 뒤엎으며 시즌 2위를 당당하게 꿰찼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라팍을 찾는 관중 수를 보면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올 시즌 역대 첫 라팍 관중 100만 명 시대를 연 데 이어 10월 1일 기준 정규 리그에서 모두 134만7천22명의 관중 수를 기록했다. 이는 서울 연고의 LG 관중(139만7천499명)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비수도권 연고의 구단이 전체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얼마나 대구 시민들이 삼성 야구에 열광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관람권을 구하기 위해 난리였고, 암표가 기승을 부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인기의 배경은 복합적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삼성 야구가 좋은 성적을 내자, 자연스레 구장으로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성적·흥행'의 두마리 토끼를 잡은 삼성 구단이 지난 시즌 종료 후 시행한 과감한 개혁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시즌 후 7년 동안 구단을 책임졌던 홍준학 전 단장이 물러나고 이종열 전 해설위원이 신임 단장으로 부임했다. 이 단장은 선수로나 지도자로서 삼성과 아무런 연이 없었기에 야구계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다 FA로 김재윤, 임창민 등을 영입하며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불펜을 대폭 보강했다. 또한 이진영 타격코치, 정민태 투수코치 등 육성에 정평이 난 코칭 스태프도 충원했다. 효율적인 전력 보강과 선수단 내 '신구 조화'로 삼성이 올 시즌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라팍 중앙 펜스에 달 모양의 전광판 '브이문'(V-moon)이 생겼다. 2010년대 삼성이 대구시민야구장에서 가을 야구를 할 때마다 승리 기원의 의미를 담은 존재인데, 이번에 설치된 것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매년 브이문이 라팍을 밝힐 것이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