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黑대白 나눴더니 외식업계에도 훈풍…지금은 '흑백요리사' 열풍

입력 2024-10-18 06:30:00

눈가리고 심사하는 등 공정한 심사 바탕, '언더독' 흑요리사 지지
여경래·최현석 등 수십년간 업계 종사한 백요리사 '관록' MZ 호응
넷플릭스 비영어권 3주 연속 1위·예약 148% 증가…화제성 지표
100인 못들었지만 1화 등장한 대구 가게도 북적…외식업계 활기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나야, 들기름"

누군가 요즘 가장 유행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이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속 화제가 된 명대사들이다. 심사위원이자 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의 안성재 셰프의 요리 철학이 드러나는 '이븐(even·고르게)하게', '익힘 정도' 와 같은 심사평 속 표현들, 출연자 최강록 셰프가 음식의 맛을 설명하는 도중 들기름이 치고 나온다는 뜻에서 말한 표현에서 시작된 '나야, ㅇㅇㅇ' 등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화제성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초대박'이다. 지난달 17일 첫 공개 이후 비영어 TV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사수하며 넷플릭스 한국 예능의 역사를 새로 썼다. 덕분에 감소하던 OTT 넷플릭스 이용자수도 한달만에 반등에 성공하면서 '효자' 프로그램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달여 간 출연자 만큼이나 프로그램에 몰입했던 주말& 코너 담당기자 세명도 당분간 계속될 이 열풍의 요인을 짚어보기로 했다. 우승자의 요리를 맛볼 순 없어도, 프로그램을 요리조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예정!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예능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언더독 흑(黑) vs 관록의 백(白)

흑백요리사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흑수저' 요리사 80명과 상대적으로 유명한 '백수저' 요리사 20인이 각종 경연을 통해 최후의 1인을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심사를 받는 동등한 출연자 간에도 계급을 나눠 흑과 백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관전 포인트가 묘미다.

우선 이름 대신 닉네임을 달고 나와, 우승까지 가야만 본명을 공개할 수 있는 흑요리사는 보는 사람들의 언더독을 응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흑요리사와 백요리사의 1대1 경연에서 백종원, 안성재 두 명의 심사위원이 안대를 쓰고 오직 맛으로만 심사하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타 요리 경연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심사 방식을 채택하면서 공정성 논란을 애초에 차단한 것이다. 최종화에선 흑요리사 '나폴리 맛피아'가 우승하면서 본명 권성준을 공개하는 장면까지 언더독 서사의 퍼즐을 완벽하게 맞춘다.

백종원, 안성재 두 명의 심사위원이 안대를 쓰고 오직 맛으로만 심사하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제공
백종원, 안성재 두 명의 심사위원이 안대를 쓰고 오직 맛으로만 심사하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제공

백요리사 또한 결코 이기기 쉬운 상대들이 아니다. 50년 중식대가 여경래를 비롯해 한식, 일식, 양식 분야에 수십 년간 몸담고 있는 장인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백수저가 괜히 백수저가 아니라는 반응을 나오게 했다. 한 20대 시청자는 "요즘처럼 직업이 안 맞으면 금방 그만두는 시대에, 오랫동안 자신만의 한 길을 파는 대가들의 모습에서 많이 배웠고 필요한 정신인 것 같다"고 시청 소감을 밝혔다.

특히, 최종 2등으로 마무리한 백요리사 에드워드 리는 미국 유명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자 출신으로 심사위원급의 커리어를 지녔음에도 경연에 도전했다. 재미교포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고자 그만의 색깔이 담긴 한식을 선보이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지난 1일 기자는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을 통해 흑요리사 트리플스타의 가게 트리드의 11월 예약에 도전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마감됐다. 최현정 기자
지난 1일 기자는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을 통해 흑요리사 트리플스타의 가게 트리드의 11월 예약에 도전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마감됐다. 최현정 기자

◆요식업계에도 '흑백요리사 붐'

지난 1일 기자는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을 통해 프로그램 출연자 중 한명인 흑요리사 '트리플스타'의 가게 '트리드'의 11월 예약에 도전했다. 평소 티켓팅에 자신있던 기자였지만 30초도 안돼 마감되면서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10일에는 최종 우승자 흑요리사 권성준 씨의 '비아 톨레도 파스타바'의 예약에 도전했지만 우승의 여파로 11만 여명이 몰리면서 앱이 일시적으로 마비가 되기도 했다.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방송 이후 출연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검색량과 예약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첫 방송 이후 한 주간 출연 식당 검색량은 전주 대비 74% 급증했고, 예약 증가율은 약 148%를 기록했다. 그중 한 식당은 예약 건수가 무려 4,937.5% 증가한 곳도 있었다. 이러한 '흑백요리사 열풍'이 침체된 외식업계에 활기를 주면서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있다.

지난 9일 오픈 시간에 찾은 팔공산에 위치한
지난 9일 오픈 시간에 찾은 팔공산에 위치한 '엄마밥상'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지역에도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가 된 가게가 있다. 1화에서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에게 맛으론 인정받았지만, 밥이 없어 짜게 느껴진 탓에 예선에서 탈락한 바로 그 집이다.

주말& 팀은 지난 9일 팔공산에 위치한 '엄마밥상'을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미리 캐치테이블로 예약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뒤늦게 접속했지만 오픈 전에도 웨이팅 번호 58번을 받으면서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또 한 번 느꼈다. 번호를 받고 현장에서 30분간 기다린 끝에 가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캐치테이블 앱을 통해 미리 웨이팅을 걸어놓을 것을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서 약 2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방송에 등장한 통영 굴로 만든 굴전부터 솥밥, 고등어,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상차림이 푸짐하다.
방송에 등장한 통영 굴로 만든 굴전부터 솥밥, 고등어,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상차림이 푸짐하다.

인원수에 맞게 솥밥 정식을 시키면 푸짐한 상차림이 금방 나온다. 방송에 등장한 통영 굴로 만든 굴전부터 솥밥, 고등어,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밑반찬을 한입씩 맛보려면 밥이 모자랄 정도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기자의 입맛엔 그리 짜게 느껴지지 않았고 간도 딱 맞았다. 다음은 팀원들의 한 줄 평.

▷말 그대로 '엄마밥상'을 먹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구미를 당길 정도의 요리는 아니었지만, 누가 와도 크게 입맛을 벗어나지 않을 표준의 맛(?).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몰리는 밥집의 경우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해 음식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주 배부르고 기분 좋게 식사했다. (이연정 기자)

▷개인적으로 밥이 질었다. 꼬들꼬들한 밥 취향이라면 섭섭할 수도! 나는 섭섭했다.. 굴을 못 먹는 사람이라도 15가지의 밑반찬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한소연 기자)

흑백요리사 1화에서 화제가 된 통영 굴로 만든 굴전.
흑백요리사 1화에서 화제가 된 통영 굴로 만든 굴전. '엄마밥상'의 대표 메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