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생활고 시달리며 손주 둘 키우는 할머니 "나 죽기 전까지만이라도…"

입력 2024-10-15 06:30:00 수정 2024-10-15 09:31:04

이혼 후 홀로 키운 아들…결혼 집 나가 두 손주 떠안아
생활고 시달리며 손주 키웠지만, 첫째 건강·둘째 비행으로 힘들어

임순자(83·가명) 씨가 자나 깨나 할머니 걱정을 하는 손자 윤민(15·가명) 군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김지효 기자
임순자(83·가명) 씨가 자나 깨나 할머니 걱정을 하는 손자 윤민(15·가명) 군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김지효 기자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대구 북구에 사는 임순자(83·가명) 씨는 10여 년간 연락도 제대로 닿지 않는 자식 대신 생활고에 시달리며 손주를 길러 왔다. 하지만 80대 노인의 몸으로 중학생 손자 둘을 감당하기가 점점 벅찼다. 둘째는 자꾸 집 밖을 나돌며 사고를 치고, 첫째는 그런 동생과 할머니를 걱정하느라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렸다. 순자 씨는 이런 상황이 꼭 모자란 자신의 탓 같아 우울감에 시달린다.

◆아들 내외 가출 후 손주 떠안아

순자 씨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삼팔선을 넘었다. 성인이 된 순자 씨는 직장 생활을 하다 일터에서 알게 된 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결혼 이후 상당 기간 일을 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성격 차이로 그와 이혼한 순자 씨는 홀로 어린 아들을 키웠다.

하지만 아들이 커가며 자꾸 순자 씨의 속을 썩였다. 성인이 돼 독립한 아들은 일용직 등을 하며 먹고 살았는데, 돈이 부족할 때마다 순자 씨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며 돈을 요구했다.

아들은 자신의 또래와 혼인신고를 한 후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면서도 간간이 순자 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순자 씨는 식당에서 번 품삯으로 아이들 병원비를 내주거나 냉장고, TV 같은 가구를 마련해주며 아들 내외의 살림을 도왔다. 하지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가출을 반복하던 며느리는 결국 둘째 손자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완전히 집을 떠나 버렸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아들의 연락을 받고 급히 대구로 향한 순자 씨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경악했다. 3살, 1살배기 아기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해 더러운 몰골로 방치돼 있었다. 도시가스와 전기도 끊겨 있었고, 방세도 6개월 치가 밀려 있었다.

아들은 순자 씨가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달라'는 쪽지를 써놓고 집을 나갔다. 하지만 차마 핏덩이들을 보육원에 보낼 수 없었던 순자 씨는 두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갑자기 집과 일터를 떠나 손주들을 책임지게 된 순자 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쌀을 살 돈도 없어서 매일 같이 울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다 주변인의 도움으로 구청에 찾아가 생계급여를 받기 시작하며 생활에 조금의 안정을 찾았다.

◆태권도 소질 있지만 몸 아픈 첫째, 마음 아파 비행 일삼는 둘째

순자 씨의 첫째 손자 윤민(15·가명) 군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다들 으레 보낸다는 태권도장에 보내놨더니,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시합에서 메달을 휩쓸어 왔다.

윤민 군은 중학교 태권도부에 스카우트된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앓고 있던 신증후군이 갑작스레 걸림돌이 됐다. 신장 기능 부전으로 몸이 퉁퉁 붓는 신증후군은 꾸준히 관리를 해주면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다지만, 한 번씩 몸이 퉁퉁 부어서 몸무게 조절이 안 되고 증상이 심해지면 학교에 못 나가는 경우도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민 군의 동생 윤성(13·가명) 군이 중학생이 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양극성 정동장애 때문에 스스로 행동이나 사고 제어가 되지 않는 윤성 군은 학교를 자주 결석하고 비행을 일삼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꾸준히 먹지 않았고, 충동적으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물건을 훔치는 바람에 순자 씨가 갚아줘야 할 돈이 계속 불어났다. 윤성 군의 심리 상태는 매일같이 극단을 넘나들었고 순자 씨는 결국 지난 9월 둘째 손자를 행정입원시켰다. 의료급여 대상자로 입원에 따른 자부담은 없으나 병원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사느라 매달 수십만원이 나간다.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은 최근 첫째 윤민 군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기량 관리를 잘하면서 고등학교 태권도부에 스카우트돼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점. 다만 월 20만원 정도의 태권도부 회비, 교통비 등 대회 출전 비용으로도 또 수십만원이 매월 꾸준히 들 예정이라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철이 일찍 들어 할머니 걱정을 많이 하는 윤민 군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훈련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고 싶다 말하지만, 손주가 돈 걱정 없이 운동에만 전념하게 하고 싶은 게 할머니 마음이다.

매달 들어오는 백만원 정도의 수급비로 첫째 운동비, 둘째 합의금, 식비와 통신비 같은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순자씨는 사과농장에서 사과 꼭지 따는 일 등 틈틈이 부업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진다.

두 손주를 키우면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느라 최근 몸무게가 10㎏ 넘게 빠진 순자 씨. 나이를 먹은 몸은 갈수록 아픈 곳이 늘어나지만, 목숨이 다할 그날까지 이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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