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왼손만으로 찍은 사진…따뜻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풍경을 포착하다

입력 2024-10-10 10:39:21 수정 2024-10-10 20:19:21

이길화 첫 사진전 '길, 거리'
10월 14일까지 가창 동제미술관

이길화 작.
이길화 작.

무심코 지나치는 골목길, 혹은 사람들의 눈길이 미처 가닿지 않는 소소하고 너무나도 일상적인 풍경. 이길화 사진가의 시선은 그런 곳에 머무른다.

평범한 풍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만의 재료는 빛과 선(線)이다. 어쩌면 사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이 재료들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당시 그가 느낀 감정과 감동을 오롯이 있는 그대로 관람객에게 전한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는 인물 혹은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시장의 물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나 만개한 벚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멀찍이서 카메라에 담았다. 불국사를 찾은 어느 날은 사찰이나 탑 등 구조물에 집중하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경내 한 켠에서 다른 고양이를 쳐다보는 어느 고양이의 시선에 주목했다.

그가 멀리서 지그시 지켜본 인간의 뒷모습과 동물의 눈빛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창 동제미술관에 전시된 이길화 사진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가창 동제미술관에 전시된 이길화 사진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가창 동제미술관에 전시된 이길화 사진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가창 동제미술관에 전시된 이길화 사진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그의 첫 개인전을 알리는 현수막 앞에 선 이길화 사진가. 이연정 기자
그의 첫 개인전을 알리는 현수막 앞에 선 이길화 사진가. 이연정 기자

사진에 대한 열정과 찰나를 포착하기 위한 기다림은 여느 사진가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실 남들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림 그리는 것에 소질이 있던 초등학생 시절, 그에게 갑작스럽게 뇌병변으로 인한 편측마비가 왔고, 지금까지 오른팔과 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낙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진학했고 영남대 사회학 석사까지 마쳤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그는 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 부모님이 사준 카메라를 손에 처음 쥔 이후 줄곧 카메라를 곁에 둬왔던 그였다. 2022년부터 개설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해 지금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팔로워 수가 3천명 가까이나 된다.

하지만 왼손만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여간 쉽지 않은 일일 터. 생각해보면 왼손잡이를 위한 카메라는 없다. 모든 카메라의 셔터는 오른쪽에 달려있다. 왼손만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관절이 아프고, 사진을 찍다 넘어지는 등 사고도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22년부터 최근까지 크로마틱 어워드(Chromatic Awards), 도쿄 국제 사진 어워드(Tokyo International Foto Awards), 모노비전 사진 어워드(Monovisions Photography Awards), 리포커스 컬러 사진 어워드(reFocus Color Photography Awards) 등 다수의 국제 사진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유일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사실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가 많은데 촬영할 때는 주위가 조용해지고 오롯이 피사체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제게 그런 몰입의 기쁨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것이죠."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은 뒤처진 시선에서 바라본 장면들이, 오히려 우리의 예사로운 시선 밖에 있었던 것들을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그만의 특별하고 남다른 작품이 된 셈이다.

가창 동제미술관에서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 '길, 거리'에서는 일본 교토와 대구의 사라져가는 골목 등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무심히 걷다가 잊기 아까운 풍경이 보이면 셔터를 누른다. 특히 너른 앞길보다 옆길과 뒷길에서 마주치는 일상에 시선이 간다. 배경과 피사체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배가 된다"며 "이번 전시에서 사진을 감상하는 분들과 그 때 그 풍경, 그 순간의 교감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