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기업' 삼성전자의 위기 '제2의 애니콜 화형식' 가능성도

입력 2024-10-09 14:21:53

3분기 어닝 쇼크에 반도체 수장 반성문까지
HBM·파운드리 신산업 동력 확보가 관건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9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며 주력인 범용 D램이 부진한 데다, 반도체 부문의 일회성 비용 등이 반영되며 시장 기대를 밑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매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9조1천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74.49%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사진은 이날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9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며 주력인 범용 D램이 부진한 데다, 반도체 부문의 일회성 비용 등이 반영되며 시장 기대를 밑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매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9조1천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74.49%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사진은 이날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어닝 쇼크'를 기록한 데 이어 반도체 사업 수장이 이례적으로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일류기업 삼성의 변화에 경제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최근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 지연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적자 등 시대의 흐름에 뒤처졌다는 혹평을 받으며 주가는 연일 신저가를 기록하고 있다. 위기 극복 의지를 강조하며 대대적인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삼성 HBM3E에 남긴 사인.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삼성 HBM3E에 남긴 사인. 연합뉴스

◆ AI 메모리 칩 경쟁력 부진

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조만간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조직 문화 쇄신 등에 나설 전망이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이 그동안 삼성 반도체 사업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반도체인의 신조'를 새롭게 만들기로 한 것도 분위기 쇄신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4분기 연말 인사에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전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9조1천억원으로 이미 낮아진 시장 기대치에도 못 미치며 그간의 우려를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영현 DS 부문장(부회장)은 전날 잠정 실적 발표 후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이례적으로 별도의 사과 메시지를 냈다.

3분기 실적 부진이 반도체 부문의 실적 악화와 연관을 지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 DS 부문 영업이익을 5조3천억원 안팎으로 예상했던 증권가는 잠정 실적 발표 이후 4조∼4조4천억원 수준으로 재차 하향 조정하는 분위기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삼성전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3분기 영업이익은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에 밀릴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실적 컨센서스(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6조8천101억원으로 집계됐다. 양사 영업이익 차가 2조원 이상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날 간담회에서 "반도체의 겨울은 아니지만 삼성전자의 겨울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며 "5세대 HBM인 HBM3E의 엔비디아 승인 지연, 파운드리 경쟁력 약화, 부진한 3분기 실적에 주가가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범용 D램이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 부진으로 주춤한 반면, HBM 시장에서는 아직 '큰 손 고객'인 엔비디아의 퀄(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며 SK하이닉스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이 최대인데 영업이익이 안 좋다는 것은 영양가 없는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실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간 HBM3E 제품의 퀄 통과와 납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던 삼성전자는 전날 실적 참고 자료에서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사업화가 지연됐다"며 사실상 처음으로 HBM 사업 지연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오후(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오후(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파운드리 부진도 악재, 과감한 결단 필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사업의 적자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잠정 실적 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필리핀 현지에서 로이터통신에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을) 분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비메모리 사업 성장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도 사업 부진에 따른 위기론을 일축하고 조직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취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 부회장이 사과 메시지와 함께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보다 철저한 미래 준비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 혁신 등의 위기 극복 방안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근 주가 급락이 과도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현재 삼성전자에 '애니콜 화형식'에 버금가는 충격 요법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는 1995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지시에 따라 시중에 판매된 무선전화 15만대를 전량 회수해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 쌓은 뒤 임직원 2천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를 산산조각 내고 화형식을 치렀다.

무선전화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은 데 따른 조치로, 당시 잿더미로 변한 무선전화는 150억원어치 분량이었다. 이는 애니콜과 갤럭시로 이어지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신화의 밑거름이 된 대표적인 일화로 꼽힌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위기를 맞은 삼성전자가 과감히 옴니아를 단종시키고 갤럭시 S시리즈를 내놓은 바 있다. 또 2016년에는 배터리 결함이 발견된 갤럭시노트7에 대해 250만대 전량 리콜이라는 초강수로 대응한 점 등도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사례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역사는 한 마디로 위기 극복의 역사"라며 "'애니콜 화형식'으로 위기를 돌파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한단계 성장했듯 이번 위기도 특유의 저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