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학을 통한 독립운동 "글로 쓴 대한 독립만세"

입력 2024-10-07 14:28:06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월호 발행
글·음악·그림으로 일제 탄압과 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

김성장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가 쇠귀체로 쓴 이육사 시.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김성장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가 쇠귀체로 쓴 이육사 시.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경북은 의병과 독립운동이 꾸준히 진행되어 온 지역이다. 흔히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으로 독립운동을 기억하지만, 글·음악·그림으로 일제의 탄압과 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월호에서 '예술과 문학을 통한 독립운동(경북지역)'이라는 주제로 이들을 기리며 옅어지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경북지역 의병항쟁과 의병장들의 문학'에서 김항기 연구위원(독립기념관)은 경북지역에서 벌어진 의병활동과 그들의 저항정신이 담긴 문학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일제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개입하면서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 정책을 진행했다. 이에 대항하는 의병은 전기의병이 봉기한 후 1905년 중기의병, 1907년 후기의병 단계로 나뉘는 범민족적인 저항운동을 펼쳤다.

경북지역의 경우 1896년 1월 17일 안동의진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창의했다. 안동의진을 이끈 김도현 의병장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시대를 탄식한 '탄시사'(歎時事)를 지었다.

'이제야 죽는데 어느 땅에서 죽을고/ 옛 나라에 남은 강토가 없으니/ 노중련이 죽은 지 수천 년이 되었지만/ 밝은 달과 같이 오히려 빛나는구나'

그는 망국으로 인해 한몸 묻힐 땅이 없음을 탄식하며 영덕에 있는 관어대에 몸을 던지기 전, 글을 장손에게 남겼다.

1906년 문경의병에 합류해 이강년과 함께 활동한 의병장 신태식은 '신의관창의가'를 지어 의병 활동을 기록했다. 이 가사는 1907년 죽령 일대에서 벌어진 이강년의진의 접전지, 의병 모집, 주민과의 관계 등에 관하여 상세하게 기록해 문학을 넘어 역사적 가치도 매우 높다.

김성장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가 쇠귀체로 쓴 이육사 시.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김성장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가 쇠귀체로 쓴 이육사 시.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이 밖에도 '광복 특집 만화 팔원(八院)'에서는 백석 시인의 작품을 이미지화했다. 토속적 어휘와 감각적 표현으로 장면이 눈앞에서 그려지듯 시를 쓴 백석 시인의 동명 작품 '팔원'을 웹툰으로 만날 수 있다.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에서는 이육사 시인이 쓴 단 한 편의 희곡 '지하실'을 소개한다. '지하실'은 이육사가 다녔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졸업식에서 공연된 3편의 연극 중 하나로 단막극의 성격일 것으로 추측된다. 시인 이육사가 아닌 새로운 혁명을 꿈꾸며 불타오르던 이육사를 상상해 본다.

'이육사의 시를 쇠귀 민체로 쓴다는 것'에서는 이육사의 정신세계 가치를 글씨의 형태와 구성으로 담아낸 김성장 대표(세종손글씨연구소)가 서예전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각오를 담담하게 전한다.

김성장 대표는 최근 이육사 시를 쇠귀체로 쓴 작품을 이육사 문학관에서 전시해 많은 공감과 육사 선생의 독립의지를 되새기기도 했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의 '임하臨河에서 독립을 외치다, 하락정河落亭'에서는 근대식 학교인 봉양서숙과 인곡서당을 설립한 송기식을 소개한다. 송기식은 1945년 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봉양서숙과 인곡서당의 정신이 깃든 독립의 하락정을 건립했다.

한편, 웹진 담談 2024년 10월호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https://story.ugyo.net/front/webzine/index.do)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