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스라엘 정보력을 배우자

입력 2024-10-02 17:42:26 수정 2024-10-02 19:50:14

이창환 국제팀장
이창환 국제팀장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상대한 전쟁에서 보여 준 정보력과 공격력은 경외감과 잔인함을 동시에 일으킨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건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줄은 몰랐다.

최근 두 달 동안 보여준 이스라엘의 귀신같은 작전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하마스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은 그 방식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은 하니예를 암살하기 두 달 전인 5월쯤에 숙소에 AI 폭탄을 설치했다. 포섭해 놓은 이란 측 조력자의 도움을 받았다. 하니예가 앞서 세 차례 이란을 방문해 이동한 패턴을 철저히 분석해 숙소와 객실까지 특정하는 놀라운 정보력을 보였다.

헤즈볼라 조직원을 겨냥한 무선호출기(삐삐) 원격 폭발은 발상이 놀랍고, 결과는 잔인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이 아예 삐삐를 직접 만들었다. 정체를 숨긴 회사를 해외에 세우고 원격 폭탄이 설치된 삐삐를 헤즈볼라에 팔았다. 올 2월 헤즈볼라 지도부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 후 수출량이 급증했다. '때'를 기다린 이스라엘은 지난달 17, 18일 삐삐 수천 대를 동시에 폭발시켰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린이, 부녀자 등도 큰 부상을 당했다.

헤즈볼라의 수장이자 상징인 하산 나스랄라의 암살은 이스라엘 정보력의 결정판이다. 나스랄라는 암살을 우려해 지하 18m 벙커에 숨어들었지만 이스라엘은 그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다. 회의 장소, 시간, 명단 등 모든 것을 꿰고 있었다. 이곳에 최첨단 로켓 100여 발을 쐈고, 헤즈볼라 지휘부는 초토화됐다.

이스라엘이 놀라운 첩보 수행 능력을 기른 건 역설적으로 2006년 레바논 침공(2차 레바논 전쟁) 패배 덕분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토벌을 목표로 지상군을 투입해 한 달 넘게 싸웠지만 게릴라 전술에 굴욕적으로 철수했다. 이후 도·감청, 위치 추적, 통신망 해킹 등 막대한 자원을 정보 역량 확보에 투입했다. 인공위성과 드론을 통해 헤즈볼라 무기 창고 내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중국, 러시아 등 잠재적 적국에 둘러싸여 있다. 이스라엘이 접한 외부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의 첩보 능력을 제대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좌우 진영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을 보는 시각도 진영 간 평행선을 긋는 탓에 정권에 따라 첩보 방침도 곡예를 탔다.

대북 첩보 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이 2017년 중국 정보 요원에게 포섭돼 돈을 받고 비밀 요원 정보 등을 넘긴 사실이 최근 적발됐다. 군무원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해 온 블랙 요원들의 신상과 부대 현황 등을 넘겼다. 7년 동안 총 30회 기밀을 유출했고, 1억6천만원가량을 받았다. 군무원이 본격적으로 기밀을 유출한 시점이 2018년부터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권이 군 방첩과 보안 감시를 하는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한 시기와 비슷하다.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당시 남북 해빙 무드를 타고 우리의 대북 첩보 활동 정보가 대거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첩보전에 국가의 명운을 걸다시피 했다. 그 결과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결정적인 순간에 궤멸시킬 수 있었다. 우리가 철저하게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