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코로나로 학업 포기한 후 25주 초미숙아 출산한 어린 엄마

입력 2024-09-24 06:30:00 수정 2024-09-24 07:15:53

가난이 싫어 한국행…코로나로 일자리 잃어 학업 중단
생활고 속 임신…25주 초미숙아 쌍둥이 출산

응우옌 티린(27) 씨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픈 아기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지효 기자
응우옌 티린(27) 씨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픈 아기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지효 기자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말이 싫었다. 그래서 응우옌 티린(27) 씨는 기회의 땅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자격증을 따면 건실한 직장을 얻을 수 있겠지. 그러면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끊을 수 있겠지. 갓 스물이 되던 해 티린 씨는 하고 싶은 공부도 맘껏 하고 돈 많이 벌어 가족들 호강도 시켜주겠다는 큰 꿈을 갖고 고향을 떠나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재난은 티린 씨처럼 의지할 데 없는 취약계층을 먼저 덮쳤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타향살이 중 아픈 아기를 낳게 된 티린 씨. 꿈을 놓친 어린 엄마에게 세상은 숨 한 번 편히 쉴 틈도 주지 않을 만큼 가혹하다.

◆공부하고 싶어 한국 유학 왔지만…코로나로 학업 중단

티린 씨는 베트남의 가난한 농부 집에서 다섯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항상 부족한 삶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다섯 자매를 어떻게든 고등학교까지 보내 주셨다. 20살이 된 티린 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자격증을 따면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고, 그렇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티린 씨는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한국 땅을 밟았다.

낮에는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티린 씨는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다. 어학당 2년을 무사히 끝마치고, 4년제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해 학부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티린 씨가 한국에 온 지 3년째 되던 해, 코로나가 터졌다. 온 나라가 멈춰 섰고, 티린 씨는 일하던 식당에서 내쫓겼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 나가려 했지만,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학비도 충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 설 수는 없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 한국에 온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빚을 갚고 생활을 꾸려 나가야 했다.

티린 씨는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온전히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악바리처럼 일했다. 그러다 부모님끼리 알고 지내던 또래 반테 씨와 한국에서 재회하게 됐다. 같은 유학생 신분에 동향 사람인 만큼, 티린 씨는 타국에서 생활하는 고충을 나누며 반테 씨와 가까워졌고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던 둘 사이에 새 생명이 찾아왔다.

젊은 나이에 부모가 된 둘은 서로가 곁에 있으니 어떤 어려운 일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티린 씨 부부는 베트남에 계신 부모님께 아이 육아를 맡기기로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그립더라도, 부부가 맞벌이로 열심히 일해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 드리고 한국 올 때 진 빚도 차곡차곡 갚아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25주 초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세상 떠난 둘째 아기

티린 씨가 일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번의 역경이 찾아왔다. 부부 사이에 계획 없던 쌍둥이가 들어섰다. 티린 씨는 앞이 캄캄해졌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상황에 세 아이를 길러 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임신 25주가 되던 달 양수가 터졌다. 병원에 실려간 티린 씨는 지난 5월 겨우 800g, 900g 되는 쌍둥이를 낳았다. 초미숙아였던 아기들은 심장, 뇌, 신장 등 성한 곳이 없었다.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던 중,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쌍둥이 둘째 아기가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는 거액의 병원비 수납을 먼저 하지 않으면 죽은 아기 사망진단서를 떼주지 않겠다고 했다. 티린 씨 부부는 어떻게든 돈 일부를 마련한 뒤 병원에 사정 사정을 해 아기가 죽은 지 2주가 지나서야 겨우 장례를 치렀다.

자식이 세상을 떠나도 마음 편히 슬퍼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세상에 티린 씨는 좌절했다. 세상을 등지고 싶어도 베트남에 있는 딸과 살아남은 아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티린 씨 마음을 읽은 것인지, 쌍둥이 첫째도 포기하지 않고 엄마 곁을 지키고 있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아기 병원비는 하루에 백만원이 넘는다. 오랜 입원과 수술로 밀린 병원비는 억 단위를 넘어섰지만, 아직 아기 몸이 성치 않다. 뇌에 물이 차서 재수술 시기를 지켜보고 있고, 탈장 수술도 받아야 했다. 아기용품, 월세, 공과금, 대출이자, 고향으로 보내는 돈을 합하면 늘 남는 것 하나 없는 삶이었으나, 지금은 그마저 줄여가며 밀린 병원비를 내고 있다. 더구나 명절로 쉬는 날이 많았던 이번 달은 반테 씨가 공사장을 거의 나가지 못해 가족의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모아둔 돈은 한 푼도 없고 빚만 한가득하지만, 티린 씨는 아기가 건강해져서 금방 퇴원할 거라는 희망을 항상 품고 있다. 티린 씨는 말한다. "아기가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열심히 일하면서 어려운 이웃도 돕고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싶어요."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매일신문사(이웃사랑)

▶iM뱅크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