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헤즈볼라 무전기, 누가 만들었나…이스라엘? 일본? 헝가리?

입력 2024-09-19 15:57:11 수정 2024-09-19 18:23:02

이스라엘이 직접 삐삐 생산해 헤즈볼라에 제공

18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 전날 발생한 무선호출기(삐삐) 동시다발 폭발 사건 사망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문상객들이 관을 옮기고 있다. 레바논 당국은 이번
18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 전날 발생한 무선호출기(삐삐) 동시다발 폭발 사건 사망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문상객들이 관을 옮기고 있다. 레바논 당국은 이번 '삐삐 폭발' 사건으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2천8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의 통신수단인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무더기로 폭발한 사건의 배후를 둘러싸고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무선호출기 제작에 대만과 헝가리 업체가 관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이스라엘이 직접 생산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삐삐 폭발 다음 날인 18일에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 등지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가 연쇄 폭발하며 추가로 20명이 숨지고 450명 이상이 다쳤다.

◆이스라엘 직접 관여

이스라엘이 직접 무선호출기를 생산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공급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년 전부터 유럽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차려놓고 기회를 엿보다가 제조단계에서부터 폭발물과 기폭장치가 삽입된 '특수제품' 수천개를 헤즈볼라에 팔아치우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이번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전현직 국방·정보 당국자 12명을 취재한 결과 이번 폭발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작전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폭발한 무선호출기의 잔해에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회사가 생산한 무선호출기가 헤즈볼라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폭발물과 기폭장치를 심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골드아폴로의 창립자인 쉬칭광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기기를 제조한 건 헝가리 업체인 'BAC 컨설팅'이라면서 골드아폴로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자사 상표 사용을 허락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BAC 컨설팅 역시 문제의 무선호출기를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22년 이 회사를 설립한 크리스티나 바르소니-아르시디아코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NBC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골드아폴로와 협력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난 무선호출기를 만들지 않는다. 나는 중계인(intermediate)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헝가리 정부는 BAC 컨설팅이 무역중개회사일 뿐 자국 내 제조시설이 없다며 "문제의 기기들이 헝가리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NYT는 익명의 정보당국자들을 인용, BAC 컨설팅은 이스라엘이 위장을 위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며 무선호출기를 만든 건 이스라엘 정보당국이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8200부대 주목

이스라엘군 내 비밀 첩보기관인 8200부대도 주목을 받고 있다.

19일(현지시간)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에 속하지 않는 비밀 첩보기관 8200부대가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이번 작전에 개입했다고 했다.

호출기와 무전기 생산 단계에서 폭약을 장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기술적 측면에 8200부대가 개입했다는 것이다.

정보장교 출신으로 이스라엘 국방 안보 포럼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요시 쿠퍼와세르는 이스라엘군 정보부대가 이번 호출기 폭파 공격에 개입했다는 확신은 없지만, 8200부대 구성원들은 이스라엘군 내부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력이라고 소개했다.

쿠퍼와세르 연구원은 "그들이 마주하는 도전은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고 부담이 매우 크다. 그래서 최고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대는 통상 18∼21세의 젊은이 중 적응력과 학습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별해 뽑은 뒤 컴퓨터 코딩과 해킹 등 첩보 수집에 필요한 도구 제작 기술을 가르치며, 미 국가안보국(NSA)과도 연계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대원이 수천명으로 이스라엘군 내 단일 부대로는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8200부대는 신호 정보 감청은 물론, 암호화, 방첩, 사이버전, 군 정보수집 및 정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이 부대의 감시 대상 지역은 이스라엘과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이다.

8200부대에서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 중 다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의 고위직에 오르거나 정보통신 분야에서 창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군은 이 부대의 활동을 좀체 공개하지 않지만 2018년에는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서방 민항기 테러 공격을 막는데 8200부대가 도움을 줬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과거 이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무력화한 스턱스넷(컴퓨터 웜) 공격, 2017년 레바논 국경 이동통신사 오게로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도 8200부대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