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
추석 하면 더 이상 가족, 고향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그 추세는 분명하고 과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한 설문에 의하면 청년층 과반이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응답을 했다. 명절에 가장 꺼려지는 말은 '언제 집에 올 거니?'였다.
'부모의 잔소리' '경제적 부담' '주변과의 비교 발언' 등이 귀성을 거부케 한다는 내용도 있다. 모두 부모들에겐 '금칙어'다. 자녀를 만나려면 아무리 궁금해도 참아야 한다.
요즘은 명절에도 체온 느끼기가 쉽지 않다. 원인인지 결과인지 모르지만 '저출생'이 거론된 지 오래다. 인구 문제가 지금처럼 중시됐던 적이 없다. 언론에 '엄청난 예산을 쓰고도 제대로 된 효과가 없다'는 기사는 간간이 있었지만, 요즘 정책은 그냥 '생색내기' '흉내 내기'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크다는 증거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청년들은 경제적 부담을 덜 방법도 없고, 기대 수준을 낮출 수도 없다.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갖는다면 부모들이 해 준 것 정도는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경제적 기반이 없다. 대부분 부모들도 자신의 노후 때문에 격세 지원까지는 힘들다. 그러니 아이를 갖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로 여겨진다.
물론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으로 깜짝 반전은 있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좀 더 손쉬운 해법을 찾는다. 우선 반려동물이다. 거리마다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노견들이 넘친다. 고양이 장례를 위해 수도권 장례식장에는 줄을 선다. 다음이 인공지능(AI)이다. 영화 'Her'는 AI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로, 이미 10년 전에 시대적 통찰과 예지를 보여 줬다.
한 AI 대표 기업이 'Her'의 목소리 주인공인 배우 스칼릿 조핸슨의 목소리를 사용하려다 실패한 일은 유명하다(사실 AI의 목소리는 집중과 친근함의 첫째 요소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들은 '노동력 문제가 발생하면 인구 증가 정책보다 AI와 로봇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언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AI를 안전하게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달 초 국회에서 AI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주로 방송·통신 관련 정치 이슈만 다뤘는데, 이번 국회 처음으로 미래 먹거리인 과학기술의 총아, AI가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한 토론자가 토론회 주관자인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에게 "지난 21대 국회 때 'AI 기본법'이 충분히 논의되었는데, 왜 입법을 미루며 원점부터 다시 토론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여당에서는 바로 통과시키려 하는데 거대 야당이 '원점부터 다시 절차를 밟자'고 해 그렇게 됐다"며 국회의원을 대표해 사과했다.
AI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산업용은 말할 것 없고, 챗지티피(ChatGTP)가 촉발한 대화형 AI 서비스 무한 경쟁에 모빌리티 주행, 휴대폰·가전기기·노인 돌봄 등 연결형 통합 서비스까지 인간 생활 곳곳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이에 맞는 다양한 법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기본 틀'도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을 넘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산업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정보 유출과 각종 사기, 딥페이크(허위 영상물)를 활용한 가짜 뉴스 생성 등 이대로라면 AI로 인한 각종 폐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나아가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인간을 능가한 AI가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절시킬 가능성도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에 영리해진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특이점'이 온다고 주장했다. 지금 추세라면 20년 안에 도래할 가능성도 크다. 많은 선진국들이 대책 마련에 분분한데 우리만 '집안싸움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우리의 적은 적성국만이 아니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가공할 적'이 바로 목전에 있다. 지금 대비하지 않는다면 크게 후회할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국민 보호 대책에 책임이 있는 국회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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