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선택적 인류애

입력 2024-08-18 19:17:55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980년대까지 시골 구석구석을 돌던 서커스단은 만병통치약을 팔러 다니는 약장수였다. 다짜고짜 약을 팔려 들면 사람들이 모이질 않으니 무료 서커스 정도는 보여 줘야 했다. 텔레비전 보급률도 낮아 무료(無聊)했던 시골에서 서커스는 진귀한 볼거리였다. 서커스단에는 왜소증 환자가 끼어 있곤 했다. 일반인과 다름없이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묘기까지 펼치니 절로 박수를 끌어내는 건 당연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는 왜소증이 있는 광대를 '요술을 부리는 난쟁이'라며 '주유(侏儒)'라 칭했다고 한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도 연회 때마다 주유를 불러 재롱을 떨게 했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비슷했는데 왜소증 환자를 '인간 장난감'처럼 취급했다.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속 그들은 왕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그림의 배경이나 도구처럼 인식된다.

인간을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구분을 두게 된다. 1903년 오사카에서 열린 내국권업박람회(内國勸業博覽會)에 아이누인, 류큐인, 대만인 등 인종 표본을 전시했는데 여기에 조선인도 포함돼 있었다. 이 와중에 중국은 대만 현지인과 같이 전시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다고 한다. 1907년 도쿄에서 열린 내국권업박람회에서도 인종 전시는 이어졌다. '학술인류관'에 상투 튼 남성과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있었다. 조선을 바라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풍속 사진 엽서는 인종적 차이를 확인하려는 목적이 확연했다. 여러 인물을 세워 두고 옆모습, 뒷모습 등을 다각적으로 찍었다. 말이 '조선 풍속 탐구'였지 인류학적 기록에 가까웠다.

일제가 조선인과 중국인을 자신들과 같은 인류로 인식한 지점은 '생체실험'이었다. 장기를 제거하거나 동물의 내장과 교체하는 실험도 마다치 않았다. 이를 자행했던 731부대 소년병 출신 시미즈 히데오(93) 씨가 79년 만에 중국 하얼빈 만행 현장을 찾아 참회했다고 한다. "수년 동안 손주를 볼 때마다 영유아 표본이 떠올랐고 고통과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일본 정부 차원의 인정과 인류애적 반성은 아직 없다. 원자폭탄 피해일인 8월 6일과 9일에만 '보편적 인류애' 절감 스위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