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추격자→전략적 동반자…일본 따라잡는 대구 기업의 ‘기술 독립선언’

입력 2024-08-14 18:30:00 수정 2024-08-15 05:45:08

산업화 초석 기계부품 기업들
노무라DS 인수한 대성하이텍…자동선반 국산화 글로벌 선도
THK-삼익THK 40년 파트너…한국OSG 절삭공구 역수출도
韓 올해 수출액 7천억불 목표…연간 규모 日 첫 역전 기대감

대구 달성군 대성하이텍 본사 전경. 대성하이텍은 첨단공구 및 공작기계 전문기업으로 일본 브랜드 노무라DS를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대성하이텍 제공
대구 달성군 대성하이텍 본사 전경. 대성하이텍은 첨단공구 및 공작기계 전문기업으로 일본 브랜드 노무라DS를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대성하이텍 제공

첨단기술 강국 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일본 산업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대구 기업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지역 기계부품 기업들은 과거 일본 업체를 뒤따르는 추격자에 불과했지만, 전략적 동반자로 성장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자로 한·일 양국의 구도가 재편되는 분위기다.

◆ 대구 기업의 약진

대구는 산업 근대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북성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구골목은 물론, 기초공정기술을 활용한 뿌리산업의 중심인 대구제3산업단지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정밀가공을 포함한 지역 기계·부품 산업계는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 기술에 특화된 일본 기업들과 협력을 이어오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2019년 일본의 소부장 수출 통제를 계기로, 기술 자립도가 높은 지역 기업들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절삭공구 전문기업 한국OSG는 일본에서 관련 기기를 수입하는 입장에서 국산화에 성공하며 기술을 역수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한국OSG는 일본 공구를 수입해 한국에 판매하는 OSG정밀공구상사로 시작했으나, 1980년대 들어 제조업을 시작했다. 당시 기술을 이전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내재화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OSG는 연구개발 및 투자를 지속한 결과 절삭공구 종합 제조사로 발전했다. IT산업용 공구와 항공부품용 초경공구, 볼스크류 전조용 다이스 등 다양한 제품군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섬세한 공정에 필요한 고품질의 공구를 선보이면서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를 찾는 일도 늘었다.

대성하이텍은 공작기계 및 초정밀부품 분야 선도기업이자 기술 자립도가 높은 강소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2014년에는 고객사였던 일본 자동선반 브랜드인 노무라DS(옛 노무라VTC)를 인수하며 관심을 끌었다. 자동선반 제품으로 세계시장에 이름을 떨쳤던 일본 기업을 자회사로 두게 된 것이다.

이후 대성하이텍은 일본 기업이 독과점 해왔던 스위스턴 자동선반을 국산화해 해외 공작기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다. 일본 주요 대기업에도 제품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수출은 물론 수입 대체효과를 높여 국내 산업계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익THK는 일본의 THK와 40년간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1984년 기술 제휴를 맺고 이듬해 LM(직선운동) 가이드 국내 생산을 위한 공장을 신설했다. LM가이드는 물체를 흔들림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공장 자동화 부품으로 반도체, 배터리 등 정밀한 공정의 필수 요소다.

진주완 삼익THK대표는 진우석 초대 회장의 손자다. THK 창업주 테라마치 타카시 사장 역시 창업주의 손자로 '3세 경영인'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3대째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지난 40년간 삼익THK는 LM가이드 국내 1위 기업이자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진주완 삼익THK 대표는 "일본의 THK와 협업을 통해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일본은 기술적으로 앞선 국가였지만 지금은 일부 첨단산업에선 한국이 더 좋은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한국 산업계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연도별 상반기 기준 한국·일본 수출액 추이. CEIC 제공
연도별 상반기 기준 한국·일본 수출액 추이. CEIC 제공

◆ 한국 수출 일본 뛰어넘을까

올해 들어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호조세가 이어지면서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다.

글로벌 경제 데이터업체 CEI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수출액은 3천348억달러로, 작년 상반기(3천70억달러)와 비교해 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수출액은 3.6% 감소한 3천383억달러로 양국의 격차는 35억달러에 불과하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 초기인 1960년 기준 한국과 일본 수출 규모 격차는 100배가 넘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은 2011년 8천236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은 2022년 6천836억달러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뒤 지난해(6천322억달러)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다 올해는 7천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전기차 전환, 2차전지, 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부문에서 한국 업계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사상 첫 역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한편 일본은 한국의 4대 교역국에 해당한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구의 경우 일본과의 교역 규모는 90만8천달러로 5위를 기록했고 경북 225만5천달러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