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오시마·영국 리버풀이 '사랑받는' 도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책] 사랑받는 도시의 선택
최현희 지음/헤이북스 펴냄

'사랑받는 도시의 선택' 표지

팬데믹을 계기로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건축교수 유현준은 코로나로 인해 시민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면서 양극화된 공간 개념에 주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공원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 문화시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가 마주한 문제는 전염병뿐만이 아니다. 불과 몇년 전까지 사람으로 가득했던 거리에 빈 상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국 곳곳에서 들려온다. 인구 감소로 인한 도시 소멸은 현재 많은 지방 도시들의 1순위 해결 과제이기도 하다. 이렇듯 공간의 중요성이 커지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경쟁력이 절실해지면서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시 재생' 또는 '혁신'을 목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지만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이 책에선 광주 '1913송정역시장', 성남 '위례스토리박스' 등 도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저자가 쇠락의 길에 선 도시가 어떻게 '사랑받는' 세계 도시가 될 수 있었는지 사례를 분석하고 짚어준다. 그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혁신에 성공한 국내외 여러 도시들에게는 다음 네 개의 공통점이 있었다. 1. 도시의 고유한 문화·예술적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2.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의 참여를 이끄는 조직화 작업이 필요하다. 3. 강력하고 비전 있는 법률과 행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4. 관광객과 방문객 유치를 위한 활동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도시 혁신의 필수 요소를 잘 구현해 성공에 이른 ▷영국 리버풀 ▷미국 오스틴 ▷뉴욕 리틀 아일랜드 ▷일본 나오시마 네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이들은 거대한 도시 계획 프로젝트가 아닌, 긴 여정을 뚝심있게 추진했을 때 시민들의 삶과 도시의 경쟁력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보여준다. 단순히 소개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변화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저자가 도식화한 '다이아몬드 프레임워크'로 각 사례를 분석해준다. 이 프레임워크는 어렵지 않다. 위에서 강조한 자원과 재원, 조직화, 법률과 제도 지원, 문화예술 활동 네 가지 요소가 다이아몬드형일 때 지속 가능하며 발전적이고 가장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인 것이다.

나오시마섬 지추미술관. 홈페이지 제공

일본의 나오시마는 1990년까지만 해도 산업폐기물로 황폐해져 지역 주민들도 떠나가서 '쓰레기섬'이라 불렸지만, 친환경 재생을 통해 파괴된 환경과 전통을 살려 지금은 '예술섬'이라는 명칭과 함께 한 해 100만여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저자가 강조한 다이아몬드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우선 도시와 주민, 문화예술가, 기업이 함께 나오시마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작업을 통해 자연환경 회복을 추진한 것이 시작점이다. 이후 섬을 매각·매입하고 그 위에 호텔과 미술관 등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자원·재원, 법률과 제도 지원이 단계별로 이루어졌다.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회장과 안도 타다오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재생 프로젝트에 앞장서면서 아티스트들과 주민 참여도 자연스럽게 유도됐다. 이렇게 오염되고 방치된 섬을 되살리는 데 기업과 개인이 30년간 노력한 셈이다.

"나오시마의 도시 혁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기업가, 예술가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과정에서 주민들의 도움과 참여가 늘 함께했다는 부분이다. 나오시마 주민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작고 소소한 삶이 이어지면서 주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점이 도시 혁신의 중요한 지점이다." (본문 254쪽)

오늘날에는 문화예술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자산이다. 단순히 개발이라고 해서 건물만 쌓아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화예술에 기반해 도시 고유성을 살리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것이다. 도시 개발 전문가가 아닌 나와 같은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채워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점검해보기를 권한다. 이를 통해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모습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72쪽, 2만1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