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민기자의 봉주르, 파리] 취재 후기-걸어서 누빈 파리 시내

입력 2024-08-11 01:43:20 수정 2024-08-13 17:55:38

제한된 취재 쿼터 덕에 일반인 불편함 함께 느껴
매일 파리 곳곳 걸어 다니며 사람들과 만나 대화

프랑스 파리에서 오전 취재를 위해 숙소를 나서는 길. 잠시 동행한 지인이 찍어준 사진이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오전 취재를 위해 숙소를 나서는 길. 잠시 동행한 지인이 찍어준 사진이다. 채정민 기자

해외에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여러 번 취재했다. 경험, 기억이 쌓여도 일상에 쫓기다 보면 이내 잊어버린다. 다시 해외로 나서는 길이 낯설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도, 언제나, 잘, 헤쳐왔다' 되뇐다. 며칠 지나면 잊었던 본능(?)이 살아나리라.

사실 출장 전부터 일이 꼬였다. 어떤 이들은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으니 좋겠다고들 했으나 출장 자체가 불투명했다. 대한체육회가 지방 언론사에 취재 쿼터 신청 기회조차 주지 않은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각계에 도움을 요청해 뒤늦게 출입이 제한된 쿼터를 겨우 하나 받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날, 센강 주변으로 가려던 인파를 취재하던 기자를 지인이 찍었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날, 센강 주변으로 가려던 인파를 취재하던 기자를 지인이 찍었다. 채정민 기자

출장 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출장비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일찍 숙소와 항공권을 확보할 수 없었기에 두세 배는 더 돈을 써야 했다. 새삼 대한체육회가 얄미워졌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발굴해 적어낼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 '맨땅에 헤딩'해야 할 판이었다. 이래선 죽도, 밥도 안된다.

고심 끝에 일할 사람을 늘렸다. 지인에게 얘기했다. 여행 비용 일부를 지원할테니 짬짬이 일도 좀 거들어 달라고. 수습 기자를 1명 데려가는 꼴이 됐다. 라면과 김치 등을 챙겨가 식비를 아끼고, 2시간 이내 거리는 걸어 교통비를 줄였다. 지인은 여행 중에 보고 들은 걸 풀어놨다. 기자가 챙겨봐 달라고 한 것들도 모아 건넸다.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 기간 샹젤리제 거리에 설치된 삼성전자 홍보 부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 기간 샹젤리제 거리에 설치된 삼성전자 홍보 부스. 채정민 기자

그가 수습 기자 역할을 잘 해줬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순찰 근무 중인 한국인 경찰관을 봤다고 전했다. 우리 신문 시경 캡을 통해 현장팀장의 연락처를 확보했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러 갔다가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을 봤다기에 달려가 사진을 찍었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끊임없이 움직이다 보니 뭔가 하나씩 걸려들었다.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호기심에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 거기서 한국 문화 알리미로 나선 파리 여대생 셋과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숙소로 쓴 민박집 주인이 연결해준 덕분에 프랑스 양궁 대표팀의 통역을 맡은 한국 교민도 만났다.

프랑스 파리의 팡테온. 도로 사이클 경기 탓에 가던 길이 막혀 기다리던 중 찍은 사진이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의 팡테온. 도로 사이클 경기 탓에 가던 길이 막혀 기다리던 중 찍은 사진이다. 채정민 기자

경기장 출입이 제한되다 보니 일반 시민들처럼 바리케이트를 따라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보통 사람들의 불편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센강에서 개막식이 열렸을 때도 센강 주변을 걸어 쏘다닌 덕분에 (휴대전화 번역기를 거쳐)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쉽게 들었다. 하루 평균 4~5시간, 20~25㎞를 걸었다.

생각할 게 많을 때면 무작정 걷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뭘 써야 하나' 고민하며 걷고, 또 걸었다(비용 문제도 있었지만). 평소 차 없이 '뚜벅이'로 다닌 터라 견딜 만했다. 다만 운동화로는 뜨거워진 발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해 가져간 스포츠 샌들이 요긴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을 취재하는 동안 배를 자주 채워준 2유로(약 3천원)짜리 납작 복숭아 세트(위). 아래는 각국 취재진이 일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을 취재하는 동안 배를 자주 채워준 2유로(약 3천원)짜리 납작 복숭아 세트(위). 아래는 각국 취재진이 일하는 '메인미디어센터' 매점에서 파는 핫도그다. 손바닥만한 빵에 소시지 하나를 끼웠는데 9유로(약 1만3천400원). 사악한 가격이다. 채정민 기자

새삼 대한체육회가 감사(?)했다. 마침 코리아 하우스에서 만난 대한체육회 관계자(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만난 사이다)가 반가운 척하며 '왔으면 연락 좀 하지'라 했다. 연락해도 사정이 달라질 리 없다. 국제대회 때 취재 쿼터를 받으려 하면 예전부터 외면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예전처럼 이번 역시 미안한 척조차 안 할 거 아는데 굳이 친한 척할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도 또 그럴 걸 아니까 더 그랬다.

한 경기장의 공동취재구역에선 몇몇 기자가 뒤에서 수근댔다. '저 모자를 왜 여기서…." 뒷말은 잘 안 들렸다. 기자는 삼성 라이온즈 모자에 대구FC 티셔츠를 입었다. 어이가 없었다. 뉴욕 양키스 모자, 맨체스터 시티 티셔츠를 입으면 괜찮고 이건 촌스러운가. 생각하는 수준이 낮다. 보스턴 레드삭스 모자와 리버풀 티셔츠가 여러 개지만 '우리 지역팀' 것을 걸치려고 일부러 안 챙겨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을 맞아 취재진을 위해 마련한 메인미디어센터. 평소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을 맞아 취재진을 위해 마련한 메인미디어센터. 평소 '팔레 데 콩그레'란 이름으로 불리며 컨벤션센터로 활용되는 곳이다. 오후 9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하늘이 환하다. 채정민 기자

많이 걸어서 그런지 일과가 끝날 무렵이면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잠이 잘 안 왔다. 오후 9시가 넘어도 밖이 밝은 곳이라 더 그랬다. 그냥 10시, 11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후엔 싸구려 와인 몇 잔을 수면제 삼아 잠을 청했다. 이제 집에 간다. 빨리 떠나고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쉽다. 좀 더 눈에 담아둘 걸 그랬다. 파리가 또 생각날 것 같다. 파리에서 채정민 기자 cwolf@imaeil.com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옆 센강 주변에서 순찰 중인 기마 경찰관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옆 센강 주변에서 순찰 중인 기마 경찰관들. 채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