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전공의 없는 병원’

입력 2024-07-29 18:56:34 수정 2024-07-30 05:37:16

이화섭 사회부 기자

이화섭 기자
이화섭 기자

하반기 모집을 통해서도 대다수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전공의 없이도 상급종합병원이 운영되도록 하는 구조 전환 방안을 다음 달 말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의사 배출 '절벽'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상급종합병원의 구조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8월 말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방향의 최종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의료개혁 방안을 통해 계속 이야기해 왔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의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의료 공백 상황이 발생하기 전 상급종합병원의 당직 근무를 '젊고 값싼 노동력'인 전공의를 중심으로 돌렸다면, 앞으로는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로 팀을 꾸려 대응하는 방안이 가시화되고 있다. PA 간호사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제도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 중 40%를 차지하는 전공의 비중을 미국·일본과 같은 10% 비율로 차츰 줄여나갈 예정이다.

전문의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질환에 집중하는 진료 체계도 확립할 계획이다. 일반 병상을 현재보다 최대 15%까지 줄이고 상급종합병원의 무분별한 병상 확장을 막기 위해 병상당 전문의 기준 신설을 검토할 방침이다. 응급, 심뇌혈관, 외상, 고위험 분만 등 필수 의료 분야를 강화하며 전공의 중심에서 벗어나 인력 구조를 전환한 상급종합병원에는 중증 중심으로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를 인상해 줄 계획이다.

전공의들의 요구 사항 중 하나인 근무 여건 개선도 계속 추진한다. 전공의 근로 시간을 주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줄이고, 쉬지 않고 연속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하는 등의 시범 사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또 지도전문의를 확충하는 등 수련도 내실화하고, 수련 비용 지원 등 국가 책임도 강화하기로 했다.

문제는 재정이다. 이러한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문제다. 일반적으로 전문의 인건비가 전공의보다 훨씬 높은 데다, 경증 환자 진료를 줄일 경우 당장 병원의 수익도 줄어들어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장은 "지역의 사립대병원 중 서울의 대형 상급종합병원처럼 자금력과 규모를 갖춘 병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 구조가 개편된다면 이는 비수도권 사립대병원이 무너지는 수준을 넘어 최악의 경우 지역 의료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의 재정 마련 방안이 성공의 핵심이겠지만 아직 관련한 방안이 나오지 않아 정부의 정책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전공의 수련을 책임지는 데 수조원의 재정이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얘기다. 박용범 대한의학회 수련교육 이사는 지난 26일 열린 제1차 전국 의사 대토론회에서 "2014년 기준 미국 정부는 전공의 수련에 연간 3조∼4조원을 투입하는데, 민간 보험사가 전공의 교육에 쓰는 7조원까지 합하면 국가와 민간이 연간 10조원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전공의 급여와 교육훈련비, 지도전문의 교육비를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의정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처럼 천문학적인 재정이 들어가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이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