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공적 마인드

입력 2024-07-28 19:06:48 수정 2024-07-29 11:10:29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매달 구토(嘔吐)제를 복용했다고 썼다. 동시대 사람인 히포크라테스도 정기적 구토를 권장했다. 체액론이 바탕에 있었다. 체액 불균형이 질병을 부른다는 주장이었다. 사혈(瀉血) 처방도 여기서 비롯됐다. 헌혈(獻血) 후 두통이 사라졌다는 일부의 증언은 요즘도 있다.

헌혈은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공여(供與)되는 것이라 반드시 적격성을 따진다. 기증자의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게 필수다. 빈혈 검사, 혈소판 수 측정 등 간단한 건강 상태가 기증자에게 전달된다. 한때는 청소년들에게 일석삼조의 효과를 줬다. 봉사활동 시간(4시간)으로 인정해 주며 대학 입시에서 우대하기도 했다. 나눔의 정신을 인성과 결부(結付)했던 것이다.

30분 정도 누워서 피를 내보내면 될 것 같지만 두루 통하진 않는다. 혈관을 뚫고 들어가는 주삿바늘에 공포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 '주사 공포증'이다. 날카로운 것에 긴장하는 정도가 과하면 혼절(昏絕)할 수도 있다. 이들에겐 금방 끝난다는 말로는 달래지기 어려운 도전이다.

더구나 채혈용 주삿바늘은 두꺼운 편이라 맨눈으로도 뾰족한 물성(物性)을 안다. 건장한 성인 남성 중에 헌혈 경험이 없는 이들이 더러 있는 까닭이다. 애꿎게 간호사들의 의술 수련 부족을 탓하지만 사실 채혈용 주삿바늘이 날카로울수록 기증자는 통증을 덜 느낀다. 불량에 가까울수록 피부에 멍을 남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게 헌혈 기록이 없음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 후보자가 지난 44년 동안 한 번도 헌혈하지 않았다"며 "공적 마인드가 부족하다"고 했다. 공적(公的) 마인드 유무의 잣대에 헌혈 기록이 포함될 줄은 몰랐다.

후보자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날카로운 질의를 기다리던 입장에서는 헌혈과 '공적 마인드'를 연결하는 것은 생뚱맞다. 여성들 중에는 빈혈을 이유로 헌혈을 꺼리는 이들도 있는데 공적 마인드와 억지로 연결하면 억울해할 이들이 널렸다.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의원들의 질의가 예리하지 않으면 지켜보는 이들도 답답해진다. 후보자 검증 전에 의원들의 둔탁한 의도만 간파(看破)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