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5>높은 뜻을 지닌 고사를 그린 고사도이자 시의도

입력 2024-07-11 09:12:19

미술사 연구자

이재관(1783∼1838?),
이재관(1783∼1838?),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 종이에 담채, 139.4×66.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낙락장송 아래에서 한 남성이 망연히 먼 곳을 응시하는 고사도(高士圖)다. 자연 속에서 자족하며 홀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이 인물은 조선 선비의 로망을 투사한다.

오래전부터 몸은 비록 소란한 도시에 살지만 마음은 호젓하게 은거(隱居)한다는 시은(市隱)이라는 말이 있었다. 시골로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소은(小隱)이며, 조정에서 벼슬하거나 저자거리에 사는 것이 대은(大隱)이라며 '은(隱)'이라는 가치를 높게 여겼다. 그러나 시은, 대은이라는 위안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예로 이황이 있다. 한양에서 벼슬살이하던 그는 46세 때인 1546년 장인의 장례를 치르러 안동으로 왔다가 상을 마치고도 복귀하지 않았다. 이황은 고향마을 온계리의 시내 토계(兎溪)를 '물러날 퇴'의 퇴계(退溪)로 바꿔 호로 삼았다. 서울에서 관료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서 학문과 수양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고향마을 시내를 걸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세상의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지식인사회와 동떨어져 시골사람이 되겠다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기에 이렇게까지 했을 것이다. 이황의 은거는 아버지의 명예와 아들의 진로까지 포함된 결정이었다.

이 그림 오른쪽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개의치 않는다'는 '백안간타세상인(白眼看他世上人)'이 바로 그런 뜻이다. 당나라 왕유의 시구다.

이재관의 '송하처사도'는 높은 뜻을 지닌 인물을 그린 고사도이자 '백안간타세상인'의 뜻을 그림으로 그려낸 시의도(詩意圖)다. 왼쪽 위에 써넣은 글에서 강진은 시정(詩情)을 화의(畵意)로 풀어낸 이재관의 솜씨를 극찬하며 '그림의 신', 화신(畵神)이라고 했다.

송시구골(松是癯骨) 석시완골(石是頑骨) 인시오골(人是傲骨) 연후(然後) 방대득포슬장소(方帶得抱膝長嘯) 안랭일세지의(眼冷一世之意) 소당기진화신자호(小塘其眞畵神者乎) 사아작차(使我作此) 송노석괴인궤이이(松老石怪人詭而耳) 차사형자야(此寫形者也)

소나무는 이렇게 수척한 구골(癯骨)이라야 하고, 돌은 이렇게 무딘 완골(頑骨)이라야 하며, 사람은 이렇게 강직한 오골(傲骨)인 후라야 비로소 무릎을 안고 길게 휘파람 불며 냉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소당(이재관)은 참으로 화신(畵神)이로구나! 나에게 그리라고 했다면 노송, 괴석, 궤인(詭人)일 뿐인 형사(形寫)에 그쳤을 것이다.

강진은 만약 자신이 그렸다면 겉모습만 그럴싸한 형사에 그쳤을 것이라고 했다. 강진은 시서화의 명수 강세황의 증손자다. 이재관은 '백안간타세상인'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더운 여름날 청복(淸福)을 눈으로 호강시켜 준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