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쌤의 리얼스쿨] 스스로 해내도록 지도하기…학생들에게 행복을 빼앗지 않는 방법

입력 2024-07-09 06:30:00

조금만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자꾸 묻는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 주면 자신감·유능감 높아져

학생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학생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가정통신문 언제까지 내요?", "제 필통이 없어졌어요", "OO가 자꾸 놀려요!"

중1 교실은 질문 바다이다.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다. 조금만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자꾸만 묻는다. 나는 "응, 가정통신문 목요일까지야"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담임 교사가 아니다.

"며칠까지인지 스스로 알아봐",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방법을 강구해 봐", 필통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에도 마찬가지. "그 친구에게 기분 나쁘다는 표현은 정확히 했니? 확실히 하고도 계속 하면 다시 얘기하러 와", 놀린다는 것도 일단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해주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1학기 말쯤 되자,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벼운 문의 사항은 현저히 줄었고 나는 자연스레 학생들을 살필 여유가 생겨 비교적 묵직한 학급 일들에 신경 쓸 수 있었다. 학급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가장 값진 효과는 바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선생님, 친구한테 물어보니 가정통신문 목요일까지 내야 한다던데, 하루 늦게 내도 괜찮을까요?", 자신의 일을 문의하며 마치 남의 일 얘기하듯 임하던 아이들이 이렇게 변했다. "선생님, 혹시 찾아주는 친구 있으면 상점 주실 수 있나요?", 필통을 찾던 학생은 단톡방에 본 사람 알려달라는 글을 올리고 스스로 강구해 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제가 기분 나빠하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장난으로 계속 그런 거라고. 기분 나쁘다 말하니 사과하더라고요", 친구가 놀린다고 얘기했던 학생들은 스스로 해결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 과정에서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잘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경우에는 가정과 협력해 지속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도록 지도했다. 이 역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도하며 얻은 해결책이다.

여학생들은 점심시간마다 돌아가며 대화하는 진풍경을 보였다. 분명 어제까지 친한 사이였는데 어느새 서로 싸늘하다. 심지어 우는 아이도 있다. 이럴 때 아이들은 교사를 찾아와 괴로움을 호소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학생 사이에 개입하는 건 정말 신중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런데 2학기가 돼 가만히 관찰하니 13~14명의 여학생들이 멤버를 바꿔가며 1대1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심을 왜곡하지 않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단어를 찾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대화했다. 두 명 사이에 다른 친구가 끼어 중재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교우관계는 이렇게 교사의 지도보다 친구들과 치열하게 대화하고 주변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헤쳐 나가는 게 효과적인 영역이다. 혹여 친구와 관계가 뒤틀리더라도 그것까지도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인간관계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유능감을 느낄 때 행복해진다

"도영이가 해 봐."

딸이 4~5살 무렵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다. 숟가락이 입을 향하는 과정에서 음식물이 다 떨어지더라도, 양치질을 하다 방금 갈아입은 옷을 다 버리더라도, 큰일 뒤처리에 미숙해 배변 잔여물이 속옷에 남아 있을지라도 스스로 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면 아이는 미션을 끝낸 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도영이가 했다! 내가 했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뿌듯해하는 그 표정을 중학교에서도 볼 수 있다니.

어깨가 축 처져 있는 학생을 보면 나는 무언가 시키고 싶어진다. 자꾸만 심부름을 시킨다. "이거 행정실에 좀 가져다 내줄래? 교실에서 OO를 좀 불러줄래?"와 같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OO가 의욕이 좀 없어 보이는데 좋은 방법 있을까? OO랑 OO 사이를 좋게 만들 방법 있을까? 아이들이 교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하게 하는 좋은 아이디어 있을까?"같은 것까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 서서히 생각할 문젯거리를 던지면 아이는 왜 나에게 그런 것을 묻느냐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면 어떨까요, 이 방법은 어떨까요'하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표정도 밝아지고 자연스럽게 학급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다.

이에 나는 다시 한번 느낀다. 이것저것 시키고 생각해 보라 하면 귀찮게 마련인데 어떻게 그 아이 표정은 밝아졌을까. 아이들은 다 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하기를 원한다. 스스로 무언가 해냈을 때,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통제해 나갈 때, 나를 내가 꾸려나갈 수 있을 때, 유능감을 느낄 때 행복해한다. 때로는 어른들의 과도한 우려 때문에 그 행복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려가 아닌 욕심일 수도 있다. 내가 해주고 말아야 속이 편하다든가 해 주는 데서 내 존재 의미나 가치를 느낀다든가. 그렇지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혼자 해내도록 둬야 한다. 그 과정이 서툴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클지라도 말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 대화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선생님, 엄마한테 전화해도 돼요?"

"왜?"

"배 아픈데 학교 올 때 약을 안 가져와서 엄마한테 갖다 달라 하려고요."

"한두 번이 아닌데 네가 잘 챙겨오지. 갖다주시려면 어머니 힘드시잖아."

"아니요, 우리 엄마는 그런 거 갖다주는 거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도 맨날 그랬어요."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조운목 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