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대구·경북 행정 통합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특별한 지위를 갖게 될 '대구·경북 특별 자치정부'의 '밑그림' 그리기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가지 도움말을 건네고 싶다. 밑그림의 완성은 뭐니 뭐니 해도 특별 자치정부의 '거버넌스'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는 '강한 자치단체장과 무기력한 지방의회, 그리고 허약한 시민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자치단체장의 권력은 막강한데, 지방의회는 자치단체장의 결정을 추인이나 하는 '고무도장' 역할을 하기에 급급하다.
지역 시민사회가 허약하다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일차적 관계를 넘는 결사체의 발달은 더딘 가운데,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물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언론과 사회단체는 권력 감시 역할이라는 본분에 충실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상상을 한번 해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초광역 행정 통합으로 '연방제에 준하는 권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지금도 '제왕적 자치단체장'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잦은데 '연방제에 준하는 권력'이 주어진다면 '제왕과 같은'이 아니라 '황제와 같은' 자치단체장이 지역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권력의 비대칭 상황이 더 커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초광역 행정 통합에 거버넌스 문제가 밑그림의 완성이라고 한 것이다. 자치단체장이 권한을 민주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지방의회의 권능을 강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여 주민자치의 정신이 실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초광역 행정 통합을 통해 가져온 '더 많은 자원과 더 많은 재량권'이 자치단체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 민주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건 우리 지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구·경북의 정치적 데칼코마니라 할 광주·전남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이 시·도의회를 독점하고 같은 당 소속 광주시장, 전남도지사와 동종 교배를 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 정치적 패권이 시민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방제 수준의' 권력을 가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역시 '지방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지역 정치의 다양성이 실현되고 그 결과 지역에서 정치적 역동성이 생기면 제왕적 자치단체장 문제는 해결의 단서를 찾게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초의회 선거를 제외하고 모든 지방선거는 소선거구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것이 특정 정당의 지방정치 독점을 낳고 그것이 얼마나 큰 폐해를 만들고 있는지 우리는 직접 목격하고 있다.
그러니 행정 통합 논의에 지방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함께 다루어 나가야 한다. 현행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가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무엇인지? 광역의회도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는 결선 투표를 하는 것이 어떨지? 검토해야 한다.
지금은 행정 통합에 주력하고 이런 정치제도 개혁은 추후 하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런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지역 거버넌스를 바로 세우는 일은 좋은 통합을 위한 필수 사항이다. 그렇지 않으면 초광역 행정 통합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에서 특정 정당이 자치단체장과 의회를 차지하고 '연방제 수준으로' 일당 독점의 철옹성을 구축한다면 두 지역과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무슨 요량으로 미루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자치단체장의 제왕화를 막고 지방의회의 힘을 강화하며 지역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초광역 행정 통합의 밑그림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지역 거버넌스 개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들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뒤로 미룰 일도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 없는 행정 통합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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