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폭락에 늘어나는 여행 수요…수출입 기업 등 경제계 곳곳에선 신음

입력 2024-06-24 18:30:00 수정 2024-06-25 05:56:07

저렴한 일본 여행, 쇼핑 모두 즐길수 있어 인기몰이
수출입 쪼그라들며 기업 수출 규모 확 줄어든 기업 불안 증폭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와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와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일본발 승객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 1∼5월 한국과 일본을 오간 항공 승객 수가 1천15만6천79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46.2% 증가한 수치다. 연합뉴스

엔화 폭락 영향으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일본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들은 비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엔저 현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가족 단위 여행객이 늘어나는 등 항공 수요가 몰리고 있다. 올해 일본 여행객 수요가 40% 넘게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대구경북 기업들은 수출입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최대 27%가량 수출입이 감소했다. 더욱이 원화 대비 엔화의 가치가 더 떨어지면서 가격 경쟁력마저 약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부산항 전경. 연합뉴스
21일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일본발 승객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 1∼5월 한국과 일본을 오간 항공 승객 수가 1천15만6천79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46.2% 증가한 수치다. 연합뉴스

◆싼 일본 여행 쇼핑하러 떠난다

직장인 A(28) 씨는 지난 5월 말 부모님과 일본 삿포로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만 두 번째 일본 방문으로 불과 몇 달 전에는 일본 오사카로 2박 3일의 휴가를 떠났었다. A씨가 일본을 자주 가는 이유는 3시간 이내의 비행시간으로 길게 휴가를 쓰지 않아도 주말을 이용해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시아국과 비교해서 음식과 문화가 비슷하고 날씨가 쾌적한 영향도 크다.

무엇보다 A씨의 이번 삿포로행은 쇼핑 목적이 컸다. 엔저 현상에 더해 백화점 할인 쿠폰을 활용하면 입국 관부가세 포함하더라도 한국보다 30만원 이상 저렴한 명품 쇼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씨는 "엔화가 하락세라 쇼핑 계획을 세우고 삿포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번 여행으로 명품 가방 2개와 지갑 1개를 저렴하게 구매했다"며 "후쿠오카 시내 백화점의 특정 매장을 갔는데 대부분 한국인들이었고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고 전했다.

엔저 현상으로 올해 1~5월 한국과 일본을 오간 항공 승객 수가 1천만 명을 넘으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24일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한국~일본 노선을 이용한 항공 승객 수는 1천15만6천796명(출발·도착 합산)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승객 수인 694만5천507명 대비 46.2% 증가한 수치다.

이는 국토부 항공 통계가 제공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1~5월 기준으로도 가장 많은 수치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5월 여객 수도 938만6천783명이었다.

업계는 코로나19로 억눌린 해외여행 심리와 지난해부터 이어진 엔저 여파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여객 수가 급증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노선 항공편 수는 지난해 1~5월 3만9천980편이었지만 올해 5만4천973편으로 37.5%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 노선 이용객은 ▷인천~나리타(194만818명) ▷인천~간사이(187만2천442명) ▷인천~후쿠오카(138만1천387명) 등의 순으로 많았다.

이날 하나투어에 따르면 1월~5월 하나투어 해외 패키지 예약 중 일본 여행 예약 비중은 24%에 달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한 수치다. 지역도 ▷오사카(32%) ▷규슈(28%) ▷홋카이도(15%) 순으로 많았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일본은 엔저 영향 뿐 아니라 코로나 엔데믹 이후 여행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에 맞춰 항공사들이 일본에 수 차례 방문하는 여행객을 위해 도야마, 다카마츠 등 일본 소도시 노선을 증편해 동반 상승한 영향도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오사카는 특히 대형 백화점이 있어 쇼핑하기 좋아 여행 수요가 더 높고 규슈 지방은 날씨가 쾌적한 탓에 더운 여름을 피하려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여행 업계도 소도시 노선 확대에 맞춰 단독 전세기 상품 등 일본 여행에 특화된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항 전경. 연합뉴스

◆엔저에 한숨 깊어지는 대구경북 지역 기업들

이에 반해 엔저 현상에 지역 기업들의 수입, 수출액은 모두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수출 대금을 엔화로 결제할 경우 떨어진 가치만큼 손해가 발생하는 데다, 수입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온다 해도 경기 침체로 인해 수입 규모가 워낙 줄어서다.

24일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올해(1~5월) 대구 총 수출금액은 1억5천478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2%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북도 5.4% 감소한 8억5천430만달러로 집계됐다.

수입 규모도 대구와 경북 지역 모두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월까지 대구 지역 기업의 수입액은 1억7천895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4% 줄었다. 경북 지역의 경우 5억4천95만달러를 기록해 27%나 급감했다.

지난해에도 대구와 경북 지역 수출입 실적은 저조했다. 대구 지역 수출은 전년 대비 4.7% 상승한 4억1천679만달러로 집계됐으나, 같은 기간 수입액은 4억9천184만달러로 3.7% 감소했다. 특히 경북 지역은 수출과 수입 모두 크게 하락해 각각 19.4%(22억5천551만달러), 21.7%(15억272만달러)씩 규모가 줄었다.

현재 대구·경북 지역에서 일본과 교역 중인 기업은 15개(대구 6개, 경북 9개) 기업이다.

자사 전체 수출액 중 일본 수출액이 30%를 차지하는 한 기업 대표는 "엔화 폭락으로 인해 수출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나마 달러로 결제하는 거래처가 있어 버티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거래 물량도 상당량 줄어든 데다, 엔화로 결제하는 경우 단가 조정을 하기 위해 논의한다"고 말했다.

일본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인 대구 지역 한 기업 대표는 "최근 엔저 효과로 수출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도요타가 최대 실적을 올릴 것이란 소식이 들리지만, 사실 원자재 상승에다,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제조 기업들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지속화하는 엔저 현상에도 불구하고 지역 기업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진다. 달러 강세 속에 엔화 가치 하락폭이 원화보다 더 크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어서다.

24일 서울외환시장 장마감 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천389.0원으로 올해 첫 거래일 환율(1천300.4원) 대비 6.81% 증가했다. 이에 반해 같은 기준 엔달러 환율은 159.71원에 거래돼 첫 거래일(140.978엔) 대비 13.29%로 확인됐다.

대구 한 자동차 부품 제조 기업은 "해외 시장에 내놓는 수출품에 들어가는 부품마저 가격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제조업 전체에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며 "다만, 높은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서 기회를 노려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권오영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엔저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원화도 가치가 절하된 상태인 만큼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엔화 약세가 장기화한다면 철강, 석유, 자동차 부품 등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품목의 수출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