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쌤의 리얼스쿨] 아이들에게 심리적 유휴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24-06-11 06:30:00

공간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공간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새로운 생각이 창출되는 두 가지 원리로 '제약'과 '융합'을 들었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 불만족할 경우,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새로운 생각이 탄생할 것이고, 이런 생각들이 모이면 현실이 개선될 것이다. 결국은 '내가 부족하다' 혹은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면 인간은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새로운 생각이 창출되는 원리

중학교에서는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 수 있는 것들이 가득 차 있다. 일단 학생들부터가 불만이 많다. 시설이 낙후되었다, 선생님들이 꼰대다, 친구들이 마음에 안 든다, 급식이 맛이 없다…. 지난 15년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불평들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현실 세계의 불만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공간과 시설을 찾아 개조한다. 유휴공간으로 설계한 곳에 예쁘게 놓아둔 빈백(bean bag)은 스파링 상대가 되어 터진 지 오래다. 운동장 한 켠에는 얼마 전에 체육과에서 구입한 배구공에 윌슨이 그려져 있다. 지금 중학생들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나 톰 행크스를 모를텐데 말이다. 화장실 가림막은 내려앉고 탈의실 문은 삐거덕거리니 학교 시설물을 관리하시는 분들은 늘 울상이다. 중학교 남자화장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곳은 정말 놀이공원 '귀신의 집' 만큼이나 뻔하고 무섭고 괴이한 공간이다.

몇몇 선생님들은 교실과 교무실만 오가는 동선에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한다. 중학교의 하루는 정말이지 숨이 턱턱 막히는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는 것을 싫어하실 정도이다. 양치를 겨우 하는 짬에 학교 텃밭에 나와 물이라도 주며 심신을 달래야 화병(火病)을 면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공간에서는 식물들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데, 이들도 오래가지 않는다. 중학생의 공통 취미 활동인 침 뱉기, 휴지 투척 등으로 그 공간의 아름다움은 곧 시들게 된다.

◆심리적인 유휴공간이 없을 때

중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건물에서나 공간의 활용 면에서 여러 가지로 미적 감각을 찾기는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너무 예쁘다. 이것은 진실이다. 아이들 자체로 그냥 미(美)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녀석들이 낙후되는 때가 있다. 바로 심리적인 유휴공간이 없을 때이다.

어떤 학생들은 부모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하소연을 한다.

"제발 부모님한테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학생의 말이다. 부모님이 학교 일에 너무 관심이 많으셔서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도 하기 전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아이를 꾸중하는 일이 잦은 가정이다. 오늘의 사소한 일도, 내일 일어나지 않은 일도 제발 집에는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학생을 보며 담임 선생님은 안쓰러워한다.

또 어떤 학생은 부모와의 거리를 못 느끼기도 한다. 너무 붙어있어서이다.

"제가 학교에 늦게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세요?"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 그냥 두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

"저하고 있을 때는 별문제가 없어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물어보면, 함께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고 잘 지낸다고 한다. 조금 더 일상을 들여다보면, 중학교 3학년인데 같이 자고 같이 씻는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와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려고 하면 차갑게 전화를 끊는다.

우리는 여유가 있으면 탁 트인 공간을 찾는다. 왜 넓은 공간을 찾을까?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 나서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심리적 긴장감을 해소하고 본능적인 감각을 살리는 데는 탁 트인 자연만큼 약이 되는 것은 없다. 소모되지도 않고 일정하지도 않은 그 시공간이 주는 여유와 위로는 얼마나 좋은 것인지.

왜 성격 좋은 사람 옆에 친구가 많을까? 그의 마음에는 여유 공간이 많아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사소한 고민까지도 들어주는 마음이 넓은 사람, 나의 깊고 우울한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존재 자체로 복(福)이다. 그 넓고 깊은 공간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낼 뿐만 아니라, 적당하게 거리도 잘 두기에 달라붙지도, 던져지지도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용케 그런 어른들을 잘 찾아내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학교는 그러한 심리적인 유휴공간의 역할을 하기에, 이런저런 공간도 필요하고, 이런저런 선생님도 필요하다. 학부모 민원 중에 가끔 '실력 없는 선생'이라든가 '쓸모없는 교실'이라든가 하는 것은 어떤 때에는 놀랍게도 아주 소용이 있는 존재로 쓰여질 때가 있다. 적당한 빈 공간과 그만큼의 적당한 거리, 적당한 쓸모와 그만큼의 적당한 쓰임.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서 '반드시', '꼭' 쓰여야 하는 일꾼으로서만 존재의 가치를 빛낼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 그대로도 미(美)이고 복(福)이라는 것을. 사람을 길러내는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