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탄산수·계란 PB상품 상단노출 어쩌나…공정위 쿠팡 규제로 제재 확산되나

입력 2024-05-30 18:08:20

배달의민족 화면 캡쳐.
배달의민족 화면 캡쳐.

쿠팡이 자체 브랜드(PB)를 검색창 상단에 밀어주는 의혹에 대한 공정위 제재 여부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유통업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반 대기업 브랜드(NB)보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저가의 식료품이나 공산품 등의 PB상품을 온오프라인 공간 최상위에 노출하는 전략이 쿠팡과 유사한 만큼, 공정위가 만약 쿠팡의 규제가 본보기로 작용할 경우 규제 방침이 확산돼 PB사업을 영위하는 업계가 크게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물가에 PB상품을 찾는 소비자 증가로 최근 대형마트와 이커머스를 넘어 배달의 민족 도 공격적으로 최상단 노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시 3개월 PB상품, 검색창 상단에 띄운 배민도 불합리? 노심초사한 유통업계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9일 1차 전원회의를 열고 쿠팡의 부당 고객 유인 행위에 대해 심의했다. 공정위 입장은 쿠팡이 상품의 검색순위 알고리즘을 조정해 PB상품의 검색 순위를 '쿠팡 랭킹순'에 무조건 포함하는 방법으로 상품을 상단에 우선 노출했다는 것이다. '쿠팡 랭킹순'은 소비자 선호도나 판매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소비자에게 고지하는데, 실제는 알고리즘을 조작해 PB상품들을 고정 노출한 점이 '부당 고객 유인'이고 쿠팡이 수익 등을 극대화했다는 입장이다. 가령 쿠팡 앱에 '우유' '시리얼' 등으로 검색하면, 저렴한 PB상품들이 다른 일반 브랜드와 함께 상위에 노출되는데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다음달 5일 2차 전원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반대로 쿠팡은 '쿠팡 랭킹순'은 쿠팡이 추천하는 상품 정렬 방식이고, 소비자는 언제든 '낮은 가격순' '높은 가격순' 등 5가지 검색필터를 이용해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다고 반박해왔다. 쿠팡은 "유통업체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이며, 온·오프라인 불문한 모든 유통업체가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세계 첫 상품 진열 규제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지난 2017년 PB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자회사 씨피엘비(CPLB)가 '곰곰'(식료품), 탐사·코멧(공산품) 등 10가지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만약 쿠팡이 공정위 시정명령을 통해 "PB상품을 상단에 우선 노출할 수 없다"는 제재를 받을 경우,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가 같은 잣대로 이커머스를 비롯한 유통업계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거나, 별도의 상품 노출 기준 등을 정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현재 쿠팡 앱에선 '우유'나 '시리얼' '식빵' 등 키워드를 치면 대기업 브랜드보다 저렴한 PB상품들이 줄줄이 소비자에게 노출된다.

마켓컬리 화면 캡쳐.
마켓컬리 화면 캡쳐.

이커머스 업계도 사정이 비슷하다. 2022년 론칭한 배민의 PB브랜드 '배민이지' 제품 수는 현재 101종으로, 이 가운데 갈비탕·계란·된장국·즉석국·탄산수 등 수십종 제품은 배민의 '배민마트'에 검색하면 PB상품이 '기본순'으로 최상단에 노출된다. 지난 2월 처음 출시한 '배그니처' 유정란 PB상품도 최상단에서 찾을 수 있다. 온라인 이마트몰 노브랜드도 베스트 상품으로 소개하는 '우유' '물티슈' '참치' '단무지' '차돌박이' 등이 '추천순' 기준으로 광고를 제외한 최상단에 배치돼 있다. 식품 PB 브랜드 'KF365' '컬리스' 등을 운영하는 컬리의 '국내산 소고기' '휴지' 등도 최상단에 배치돼 있다. 업체들은 소비자가 앱을 열 때 처음 접하는 추천순으로 PB상품을 상위 노출하되, '낮은 가격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별도 검색 필터를 제공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을 조사하는 공정위 제재 논리에서 자유로운 PB판매 유통업체가 드물 것"이라며 "PB상품이 저렴해 먼저 추천해주는 방식이 '알고리즘 조작'이면 저렴한 PB상품 판촉이 크게 위축돼 소비자 불만을 오히려 키울 것"이라고 했다. 최근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유통업체가 먼저 PB상품을 우선 노출하지 않은 것 또한 반발 여론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SSG.COM 화면캡쳐
SSG.COM 화면캡쳐

◇유통업계 전반으로 규제 확산되나..PB 집중 배치한 오프라인 마트도 안심 못해

문제는 공정위 규제가 가시화될 경우, 이커머스를 넘어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계로 규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통사들은 일반 중견·대기업 제조사 상품들과 함께 카테고리별 '골든존'(170cm 이하 눈높이 매대) 공간에 PB상품을 적극 배치하면 우선 노출 효과를 거둘 수 있어 매출이 최대 4배 오르는 효과를 누렸다. 예를 들어 김 카테고리에서 동원F&B나 CJ, 성경식품 등 인기 브랜드 김과 함께 자사 PB 김 상품을 매대 정중앙에 배치하는 식이다.

한 대형마트 MD 출신 관계자는 "본사의 상품 진열 매뉴얼에 따라 신제품이나 매출 부스팅이 필요한 상품은 매대 순서와 구역까지 지정한다"고 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 1위 올리브영 등은 예전부터 PB상품의 목표 매출을 설정해 매장마다 입구 진열 등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이 상품추천으로 PB제품을 먼저 보여준다"고 했다.

배달의민족 화면캡쳐
배달의민족 화면캡쳐

이에 대해 공정위는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하도록 소비자를 속이는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물가를 가중시키는 규제가 아니고, 무엇보다 PB상품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의 규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후 일률적인 상품 진열 방식을 정해 업계가 이를 따르면서 PB판촉이 위축될 경우, 소비자 구매가 줄어들고 고물가에 대응해온 PB산업 자체가 크게 위축돼 자칫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업계 우려는 여전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가 전 세계 주요 50개국 PB상품 비중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3%로 43위를 차지한 반면, 스위스(52%), 영국(46%) 등 선진국 비중은 매우 높다. 최영홍 한국유통법학회장(고려대 법대 교수)은 "월마트 등 해외에서도 상품 노출의 우선순위를 자체적으로 결정하지만 규제는 없었다"며 "대한민국의 유통산업이 전반적으로 외축될 수 있는 상황인만큼 더욱 숙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