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진 독립큐레이터
지난 5월 15일(현지 시각) 저녁,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레오노라 캐링턴(1917~2011)의 초현실주의 작품인 '다고베르트의 구역(Les Districtions de Dagobert)'이 2천850만 달러(약 386억 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캐링턴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또는 꿈의 세계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을 지향하는 20세기의 초현실주의(Surrealism) 예술가다. 그녀는 르네 마그리트, 호안 미로와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자신만의 개성적인 방식으로 풍부한 우화적 환상을 선보였다.
그녀의 작품에는 두건을 쓴 노파, 반인반수, 환상의 동물들, 켈트 민속과 멕시코 신화, 마술, 옛날이야기와 자장가 등에 나오는 상상의 세계에 사는 이상한 존재들의 이미지가 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란 신화적인 이야기가 그녀의 머릿속 상상력을 거쳐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한때 연인으로 알려진 막스 에른스트의 영향인지 그의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하지만, 좀 더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운 요소들이 그림 곳곳에 어우러져 화면 속 서사를 전달한다.
지난 경매의 주인공이 된 작품 역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7세기 초 갈리아를 통치했던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족 왕 다고베르 1세의 퇴폐적인 삶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인 것 같기도 하고 동물인 것 같기도 하며 어떤 것은 식물인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들이 뒤섞여 있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의식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매일 밤 다른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천일야화'처럼 작품 이면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질 것만 같다.
이 템페라 작품은 경매 전 1천200만~1천800만 달러로 예상됐지만, 10분 간의 치열한 입찰 끝에 예상가의 2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됐다. 1995년 소더비 경매에서 47만5천500달러에 판매되었던 이 작품은 29년 만에 다시 시장에 나와 약 60배의 가격에 판매됐다. 또한, 이는 막스 에른스트(2022년 2천440만 달러)와 살바도르 달리(2011년 2천170만 달러)의 경매 기록도 뛰어넘었으며, 영국 출신 여성 미술의 작품 중 최고가까지 기록했다.
사실 그녀가 재조명된 것에는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주제였던 '꿈의 우유'는 캐링턴이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해 쓴 동화책의 제목에서 따왔고, 비엔날레의 주 전시가 여성 미술가와 초현실주의에 집중하면서 미술계가 관심 갖기 시작한 것이다. 즉, 유럽과 미국,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진주 찾기가 시작됐고 그중에서 캐링턴이 발견됐다. 그리고 미술 시장에서의 그녀의 발견이 약 60배라면 미술사에서의 발견은 그 이상일 것이다. 이를 계기로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일반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에서도 예상치 못하게 지나쳤던 귀한 보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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