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경칩 즈음, 설렁탕과 들나물

입력 2026-03-05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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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과 냉이 나물
설렁탕과 냉이 나물

노란 꽃더미 속으로 두 남녀가 쓰러졌다. 알싸한 동백꽃(생강나무) 향기가 산기슭을 휘감는 소설 속 계절은 경칩 무렵이었다. 혹한을 견딘 땅 밑 뿌리는 생성의 기지개를 켜고, 몸 사리며 고요히 동안거에 들었던 양서류는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난다. '경칩(驚蟄)'은 원래 '계칩(啓蟄)'이었다. 중국 전한의 6대 황제 휘자(諱字)가 '계(啓)'였다. 전통에 따라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야 했으므로 '열릴 계(啓)'자를 '놀랄 경(驚)'자로 바꾸게 된 거였다.

경칩에는 농사의 기초를 다지는 행사가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를 처음 가르쳤다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선농제(先農祭)이다. 임금은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친경'을 하였고 음식을 나누었다. 선농제에 올렸던 소를 잡아 가마솥에서 푹 끓여낸 탕을 백성에게 나누었는데 그것이 '선농탕'이고,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 문헌에 선농탕은 언급되지 않는다. 후대에 스토리텔링된 조리서의 사료 가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설렁탕
설렁탕

소고기의 단백질은 '양' 보다는 '질'에서 차이를 보인다. 소고기의 필수아미노산은 근육 단백질을 합성한다. 한방 관점에서 보면 맛은 달고 성질은 따듯하여 비토(脾土)를 보한다. '비위(脾胃)를 보하면 보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몸을 보하고 기운을 돋우는 데 소고기를 우선했다. 고기 위주로 푹 끓여 국물이 맑은 것은 곰탕이고, 뼈를 함께 우려내어 국물이 뽀얀 것은 설렁탕이다.

봄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은 단연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을 꼽는다. 점순이와 성례를 시켜달라고 조르니 '키가 덜 자라서 안 된다'는 장인과 '나'는 기어이 싸움이 벌어진다. 상대방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잡고 잡아채는 장면이 우스꽝스럽다. 언 땅이 녹으면서 흙냄새가 번지고, 봄날의 생식 본능이 물씬거리는 작품 속 배경은 경칩 즈음이었다.

생강나무가 노랗게 눈을 뜨면 들판으로부터 봄이 온다. 겨우내 땅에 바짝 엎드렸던 냉이가 고개를 치켜든다. 경칩에 고로쇠 물을 마시기도 하지만 식탁에는 단연 들판에서 캔 봄나물이 주인공이다. 특히 노지에서 캔 냉이는 인삼보다 명약이라 하였다. 15세기 고문헌 '구급방언해'에 냉이를 '나시'라고 표기했다. 땅에서 벌어지는 모양의 '나(羅)'와 일찍 솟아난다는 '생(生)'의 어근과 접미사가 결합한 거로 추정한다.

냉이 나물
냉이 나물

지방에 따라서 나생이, 나싱이, 나숭개 등으로 불리고 있다. 냉이의 한자어는 '제(薺)'인데, '제채(薺菜)'는 '냉이 나물'을 말한다. 다른 채소보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한 냉이는 약선으로 볼 때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조화롭게 하고 간에 쌓인 독소를 풀어준다.

냉이는 약재이며 식재였기에 일상에서 국을 끓이고 죽을 쑤어먹으며 몸을 보했다. 중국에서는 만두와 춘권을 빚을 때 냉이를 넣어 양기를 보충했고, 일본에서는 봄맞이 칠종채(七種菜)에 냉이가 자리한다. 경칩 무렵에 설렁탕 한 뚝배기로 기운을 돋우고, 들나물 무침 한 접시로 상을 차리면 그야말로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 멧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중략-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2월령 부분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